얼마전 한 모임 자리에 크레이프 케이크를 몇조각 사갔다. 맛나게 먹었던 기억을 그날 모인 사람들과도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사갔던 것인데 다들 맛있다고 난리였다. 나름 뿌듯해 하고 있는데 늦게 도착한 일행이 케이크 포장 박스를 보고는 한마디 던졌다. “오~ㄹ. 이런 것도 먹을 줄 안단 말이지?”
아니, 케이크면 그냥 케이크고 포크 들고 먹으면 그만인거지, 그 케이크 먹는데는 자격이라도 필요하단 말이냐!!! “이런 것 먹는데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거냐”고 살짝 ‘발끈’ 했다. 물론 그 친구가 악의를 갖고 한 말도 아니었고, 되받아친 말도 그저 농담따먹기 분위기로 흘러갔다.
하긴 몇년전 뉴욕에서 이 크레이프 케이크가 엄청 유행하고 국내에도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긴 하다. 실제로 왕후가 먹는 케이크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그날 사간 크레이프 케이크 브랜드가 한동안 ‘잇템’이긴 했었나 보다. 맛있긴 한데 일단 사러 가기도 멀고 귀찮은데다 무엇보다 비싸다. 한조각에 거의 만원이다. 요즘 말로 ‘시발비용’이라는 이름의 작은 사치랄 수도 있겠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실제로 예쁘고 화려한 케이크나 디저트 한조각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으며 위안을 얻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을 종종 본다. 고단함 속에 배어 나오는 발랄함과 생기가 부러우면서 뭔가 짠하고 애틋한 그런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복잡하게 엉킨다. 그러다 문득 저 자리에 젊은 친구들 대신 40대 중후반의 아줌마인 나를 대입해 봤다. 좀 주첵스러워 보이려나. 손대기도 아까울만큼 예쁜 디저트를 앞에 두고 사진찍고 맛있다고 호들갑 떠는 것은 나이값 못하는 행동인가. ‘배고프면 순대국이나 드시지’ 하고 핀잔이나 들으려나. 아니 나이 들었다고 예쁜 디저트도 못 먹나. 혼자서 찧고 까부르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다 떠오른 것은 김애란의 소설 ‘하루의 축’, 그리고 그 소설에 나오는 기옥씨였다.
인천공항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기옥씨.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국제공항 화장실을 들고 나는 흔적 없이 닦아놓아야 하는 그는 공항의 집기같은 존재다. 어느 누구 하나 그의 존재에 신경쓰지 않고 그 역시 원래 그곳에 있던 사물처럼 일한다. 만남과 이별, 출국과 입국이 숨가쁘게 얽혀 활기가 넘치는 공간이지만 기옥씨의 단조롭고 쳇바퀴같은 삶까지 그 활기가 가 닿지는 않는다. 그는 남편과 일찌감치 사별하고 홀로 기른 아들이 교도소에 있다. 아들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성 탈모는 그의 머리 가운데 부분을 거의 대머리로 만들어 놓다시피 했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불안정한 파견 노동자 신분인 그에게 탈모 치료는 비행만큼이나 그림같고 먼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그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벤치에 앉아 한입 베어 무는 것은 한 아이 엄마가 화장실에 던져놓고 간, 고급스럽게 포장된 호텔 베이커리의 마카롱이다. 아마 기옥씨는 마카롱을 처음 만져보고 먹어봤을 것이다. 그 앙증맞고 조그마한 과자. 아득할만큼 단맛이 나는 그 과자는 기옥씨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할 만큼 달디 달다. 신산하고 처연한 그의 삶과 대비되는, 화려한 과자 마카롱. 마카롱을 베어 문 기옥씨의 모습은 그래서 더 슬프고 애처롭다. 그가 베어 문 것이 마카롱이 아니라 단팥빵이나 소보루빵이었다면, 국화빵이나 만두였다면 이처럼 처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작가가 다른 음식 대신 마카롱을 등장시킨 이유는 극적인 대비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마카롱은 과자의 보석으로도 불린다. 실제로 전시되어 있는 모습도 보석같다. 머랭에 설탕, 아몬드 가루 등을 섞어 얇게 구워낸 ‘껍질’ 사이에 필링을 채워넣은 동그란 과자. 형형색색 보석같은 외양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하다. 프랑스 귀족 등 상류층이 즐겼다는 과자 마카롱을 내가 처음 먹어 본 것은 2010년이었다. 마카롱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대략 2007~2008년쯤 마카롱 전문점이 강남의 백화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 먹었을 때의 그 고급스러운 단맛도 놀라웠지만 해당 브랜드에서 우연히 가격대를 보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선물 받아서 별 생각 없이 먹었기에 망정이지 아마 내 돈 주고 사라고 했으면 절대 사먹지 못했을 가격이다.
마카롱은 프랑스에서 생겨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이탈리아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피렌체 메디치가의 카트린느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에게 시집가면서 프랑스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즉 카트린느를 따라 프랑스로 간 요리사들이 만들면서 프랑스 상류사회에 퍼지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오랫동안 귀족들만 즐긴 간식이었고 만드는 법도 수도원 등 일부에서만 공유되었다. 현재와 같은 모양의 마카롱이 만들어진 것은 19세기 파리에 생긴 라뒤레라는 매장에서다. 창업자인 루이 에르네스트 라뒤레 당시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1930년대 그의 손자대에 현재와 같은 형태의, 두 겹의 껍질 사이에 필링을 채운 형태가 완성됐다.
출처/네이버 영화
소피아 코폴라가 연출하고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카롱에 의한, 마카롱을 위한 영화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마카롱이 등장한다. 루이 16세기 당시 왕실 식문화, 특히 디저트의 호화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각양각색의 디저트가 등장했고 그중 마카롱은 주인공이라 불러도 손색없을만큼 존재감을 보여줬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디저트를 라뒤레가 제작했다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영화에서 구현된 마카롱은 현재의 마카롱과 비슷한 모양이니 당시 실제의 모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유명한 마카롱 브랜드로 피에르 에르메가 있다. 제과업계의 피카소라고 불리기도 하고 마카롱계의 샤넬이라고도 불리는 브랜드다. 푸아그라맛 등 별별 기발하고 실험적인 마카롱을 많이 내놓았다.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현재는 철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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