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넘쳐나는 소재 중 하나가 음식이다. 맛있는 음식과 근사하고 럭셔리해 보이는 레스토랑, 간혹 구미를 당기는 맛집과 요긴한 정보들도 있지만 웬만한 것들은 허세용에 가까워 보인다. 어딜 가서 뭘 먹었다는 건 알겠으나 (아니 그마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읽는 사람에게서 별 의미없는 선망과 칭찬을 끌어내기 위한, 그저 자기만족적인 음식 포스팅은 솔직히 좀 짜증스럽다. 스킵하느라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음식 사진을 올릴거면 식당 정보나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상식, 요리법, 참고할만한 팁도 함께 올려달라고!!!! 아님 최소한 가격이라도.
얼마전 한 페북지인(오프라인에선 모른다)이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음식사진을 잔뜩 올려놨길래 뭔가 싶어 봤더니 유럽의 미슐랭 식당을 비롯해 유명 레스토랑에서 먹었다는 것들이다. 읽을 수도 없는 불어로 된 가게명 하나 달랑 올려놓고, 메뉴에 대한 설명도 없이 텍스쳐가 어떻다는 둥,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둥, 페어링한 와인이 어떻다는 둥. 순간 팔로잉을 끊고 말았다. 좀 심하게 말해 혼자서 맛난것 실컷 먹고는 상대를 앞에 두고 끅끅 트림을 게워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생각난 것이 이 책이다. 그렇게 자랑질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 한번 보고나서 뭐라도 보탬이 되게 자랑질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기자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를 배운 장준우 작가&셰프가 얼마전 내놓은 책이다. 사실 이 저자와 개인적으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살짝 안면이 있다. 그는 현재 연남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데 지난해만 해도 시칠리아 라구사의 한 레스토랑에서 '수련'을 하고 계셨다. 지난해 시칠리아 농업에 대해 취재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한국인이 귀한 그곳에 마침 계셨던 덕분에 취재계획의 큰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그가 유럽 10개국 60여개 도시를 다니면서 맛보고 체험한 음식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맛과 요리법, 역사, 문화적 의미까지 다방면에서 충실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담아냈다. 게다가 엉뚱하게 굳어져 통용되던 상식도, 어줍잖은 편견도 깨주는데선 살짝 통쾌함마저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흔히 알덴테 하면 우리는 본토에서 파스타를 먹는 방식이라고 알고 있다. 즉, 면을 푹 익혀 먹는 것이 아니라 심지가 씹힐 정도로 덜 삶은 듯하게 먹어야 본토식이라는 것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에 대해 '기가 차고 코가 막힐' 일이라고 지적한다.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어설프게 흉내낸 것이란다. 아마 이탈리아 사람에게 알덴테로 익혀 내파스타를 내놓는다면 당장 식탁을 엎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라고. 왜 어설픈 것인지는 책을 통해 확인해 보면 된다.
와인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나를 위로해 주는 고마운 부분도 있다. 기본적으로 와인 용어에 거부감을 느낄 뿐 아니라, 와인에 관한 무식함을 지적받기라도 하면 겸손히 받아들이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기 보다는 일단 '네가 그렇게 잘났냐'는 반발심부터 솟구쳐 오르는 뒤틀린 심사를 갖고 있는 나. 그런 내가 이 책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져서 열심히 머리 속에 정보를 주워담으려 노력했다.
이탈리아의 스테이크는 양대산맥이 있다. 피렌체 전통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그리고 밀라노 전통 '코스톨레타 알라 밀라네제'. 스테이크를 주제로 한 첫 챕터에서 두 스테이크를 대비시켜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발전시켜왔는지 풀어낸 부분은 흥미로웠다. 피렌체야 스테이크로 유명한 걸 알았지만 밀라노가 양대 산맥의 하나라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렌체에 가서 먹은 스테이크라며 아무 정보 없이 사진만 장황하게 늘어놓은 한 지인의 포스팅에 짜증이 나 있던터라 이 이야기가 더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도시 산세바스티안의 생생한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엘크와 순록고기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것도, 유럽의 도시 구석구석에 있는 새로운 '목표물'을 알게 해 준 것도, 세렌디피티의 기술을 엿볼 수 있던 것도 풍성하고 생생한 이 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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