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문재인 '못다한 이야기'

(지난 5월21일 봉하마을에서 김제동씨와 문재인 이사장이 만났습니다.
노무현전대통령 2주기를 맞아 이곳에서 김제동의 토크콘서트를 열었던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함께 토크 콘서트 무대에 선 두 사람은 무대가 끝난 뒤
밤 깊도록 인근에서 쌀막걸리에 회를 곁들여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지면에 못 다 실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
 
문=나 오늘 게스트인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요
김=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아니면 제가 꼭 물어봤으면 하는 질문은 있으신지.
문=그런건 없는데요.
김=저도 뭐 딱히 들어야겠다 싶은 이야기 없어요. 그러니 서로 별 부담없잖아요. 뭘 걱정하세요.
문=허허,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 그렇게 서는게 떨리지 않아요?
김=네. 안떨려요. 크크크. 

(무대 뒤에 마련된 출연자용 대기천막. 이곳에 들른 문이사장과 김제동씨가 주고받았던 대화입니다.
 봉하마을 뒷자락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인 토크콘서트. 문이사장께선 상당히 긴장하고 계셨습니다. 남의 잔치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하셨고요.
 아래는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이어진 이야기 입니다. )

문=참석한 분들이 기를 많이 받아갈 것 같아요. 여기 참석 못해서 못들어온 분들도 많았어요. 6천명정도 오셨다는데.
김=전 허락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슬픈 노무현은 보내드리고 기쁜 노무현을 맞이하자 했어요. 기쁘게 풀고 싶었죠.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하면서도 한구석에 아파트까지 부르면 어떡하냐 그럴 것 같아 걱정했어요.
문=이번에 서울 추모전시회도 밝게했어요. 공연이 끝났는데 생각대로 된 것 같으세요?
김=상주분들에게 잔치나 합시다 이런거나 마찬가지였거든요.
문=전적으로 제동씨 덕분에 이런 추모행사를 했다는 것이 보람스러워요. 정말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런 기조를 잡아봤는데 어떻게연구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가 오늘 행사로 그 기조가 100% 이상 살아났어요.

문=김제동 토크쇼가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해요.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게 해줘요.
김=제 체질인가봐요. 진지한 것은 제가 잘 못하는데 웃으면서 이렇게 하는게 전 좋아요.
문=<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이란 책도 있잖아요. 그런 것 같아요. 효과도 훨씬 크고. 웃는데 그 앞에서 뭐라고 항변할 수가 없잖아요. 정색하는 것 보다 상대를 훨씬 더 무력화시키는 거죠.
김=전 감사하게 생각해요. 굉장한 경험이었어요. 묘역에서 이렇게 했다는건. 묘역이라기보다는 그냥 아저씨 살아계셨다면 공연보고 노는 것 싫어하시지 않으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출발한 거에요.
 
문=우리가 묘역을 꾸민 개념도 그런 거예요. 묘역에 너력바위를 얹어 놨어요. 그건 아이들이 올라 앉아 장난치고 앉아서 놀도록 하자는 설계의 취지가 있는 건데.. 이제 시간이 가면 그렇게 되겠죠. 우리가 생각하는 경건함, 진지함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임옥상 선생이 만든 흉상의 기본 개념도 올라타고 옆에 다가가 사진찍고 놀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거에요. 거리를 두고 우러러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도록 만든거죠.
 
김=보통 동상은 우러러 보게 해놓는 게 많은데 개념이 다른거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거든요. 허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문=정말 재미있었어요. 우선 재미가 있고 봐야되요. 처음 봤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재미속에 메시지를 담으니까. 정말 좋고 부러워요. 그런 능력이.

김=<나는 가수다> 본 적 있으세요?
문=봤어요. 나는 그것도 기분 좋은 것이, 윤도현씨가 록음악은 사람들이 많이 외면한다고 하는데 그 프로그램에서는 록음악이 인정받고 평가받잖아요.
김=도현이 형이 노래를 편곡한 뒤에 꼭 저한테 물어봐요. 주위에 음악에 관한한 훌륭한 사람이 많은데 왜 자꾸 나에게 묻냐 그랬더니, 넌 음악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네 귀가 제일 정확해. 가슴으로 들었을 때 정확할 수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좋아하는 가수 있으세요?
문=윤도현씨도 좋고 조용필씨도 좋아하고.

김=여기 비서관 분들이 다들 저 모르게 공연을 보셨더라고요.
문=그런데 어떻게 그런걸 하게 됐어요?
김=제가 토크 콘서트 시작한 지 2년이 됐는데 저에게 많은 시간을 갖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 덕분에 이 콘서트가 성사됐죠. 게다가 여야를 막론하고 늘 코미디 거리를 제공하는 많은 정치인 분들. 그분들 덕에 이 자리에 오게 됐어요. 진심으로 전 고맙게 생각해요. 하하하.
문=어떻게 그 긴 시간을 혼자서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무 준비도 안했고, 뭘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뭐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요. 긴장돼 죽겠어요. 자꾸 물마시게 되고, 남의 프로그램 망칠까 싶어서. 긴장돼 죽겠어요. 사저 와서도 대단했어요. 다들 심정들이 가라앚고 슬프고 이럴 때였는데도 그 순간에도 순간순간 웃게 만들어요. 평범한 대화하다가 툭툭 던지는 말들이 너무 재미있는데, 천부적인 재능같아요.

김=사실 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결례일까 싶어서 걱정인데.
문=괜찮아요.
김=진짜 괜찮으시죠? 기분 상하실 수도 있는데.
문=할 수 없죠.
김=저기... 실장님 바지를 너무 위로 올려 입으세요. 그게 좀 어색해서 패션이 좀...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문=하하하.
김=괜찮다고 하시더니 세게 웃으시네요.
문=예. 잘 할게요.
김=전 실장님이라고 자꾸 입에 배어 있는데 어떤 호칭이 좋으세요?
문=전 변호사가 좋아요.
김=왜요?
문=평생 천직으로 생각해왔거든요. 그래서 그게 제일 편합니다.
김=대통령님과도 그 당시에 뵈신거죠.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어떠셨어요? 대통령 되시기전에 오랫동안 함께 지내오신건데.
문=제가 그분을 뵈었을 때는 변호사 노무현 법률사무소에서 뵈었는데, 당시 부산에서 가장 젊은 변호사였어요. 대화를 나누어 보면서 소탈하고 정말 권위의식 전혀 없이 우리하고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첫날 뜻이 맞아서 사무실을 같이 하게 됐지요.

김=변호사님 특전사 출신이죠?
문=네 공수부대 나왔어요. 75년이었는데 그 때 제 부대 여단장이 전두환씨였고 대대장이 장세동씨였죠.
김=하하. 그런 말씀은 안하셔도 되는데, 그렇게 치면 저도 군대에서 모셨던 사단장님이 현재 대통령 경호처장이에요.
군대 계실 땐 뭐가 주 특기셨나요?
문=기본적으로 산악점프 전문부대였고 대외적인 주특기는 폭파였어요.
김=특수부대 중에서도 특수부대네요. 자꾸 특수부대 중의 특수부대로 군복무를 하신 분에게 군대도 안갔다온 사람들이 좌파라고 하는 세상이네요. 코미디죠. 1인시위도 하셨잖아요.
문=릴레이로 1인 시위에 나섰죠. (검찰의 조현오 경찰청장 소환촉구 1인시위를 지난달 서울중앙지검앞에서 벌였다)
김=저도 1인시위 하고 있습니다. 윤도현씨 때문에. 같이 방송하면서 자기혼자 CF를 세개나 찍었어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잖아요
문=하하. 그럼 안되죠. 의리가 없네요.
 
김=우하하. 제가 여쭤보고 싶었던 것 또 하나는 대통령님을 그전에 알고 지내다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악수할 때, 그 때 기억나세요?  대통령 되고 나서 악수 각도가 달라지던가요? 친하던 동지가 대통령이 됐는데 태도에서 달라진게 있었는지.
문=제가 긴장했죠. 오히려. 그랬더니 대통령이 왜 긴장하냐고 그랬어요. 악수하는거나 사람 대하는 것은 똑같으셨죠.
 
김=제가 그런 경험이 있어서요. 재임시절 청와대 행사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전에 경호원께서 오셔서 주의사항을 주시는데 갑자기 대통령께서 들어오신 뒤에 경호원이 알려준 동선과는 완전히 다르게 저한테로 다가오시는거에요. 순간 너무 긴장돼서 머리 속으로 오만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하지, 어떤 이야기를 하지, 그런데 대통령님께서 손을 내미는 순간 모든 고민이 해결됐어요. 척추가 알아서 빠지면서 바로 90도로 허리가 꺽어져요. 하하.
문=그 말 하니까 생각나는데 임명장 수여할 때 주면서 악수 나누잖아요. 좀 멀리 서면 다 그런 자세가 돼요. 손이 닿으려면 허리를 깊이 숙여야 되거든요. 그래서 더 다가오셔서 악수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죠.
김=전 그 때 억울했던게 있어요. 사실 나중에 뵈면 따지려고 했는데.. 그 때 저한테 뭐라고 하셨나면, ‘느낌표’하고 ‘아시아아시아’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러셨어요. 그런데 ‘아시아아시아’는 제가 진행한 게 아니었거든요. 가슴 속에 한으로 맺혀 있지요.

김=책을 어떻게 집필하게 되셨나요.
문=주변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내는게 좋겠다는 권고를 했죠. 굉장히 망설였어요. 대통령도 그런 권고를 많이 받으셨는데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고, 그건 정직해야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었어요. 내 글이 솔직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고, 그런 것을 이야기하기엔 젊고. 나는 적절치 않으니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이 함께 쓰는 회고록으로 여러가지 증언이나 기록을 남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회고록은 함께 하는 회고록으로 하자는 부탁을 대통령님이 하신적이 있어요. 부탁을 하신 분이 참모들 작업 하기도 전에 돌아가신 거죠. 어찌보면 대통령 생전의 기록이나 이런 것들을 다양한 형태로 기록하고 증언하는 일이 남은 사람의 책무나 숙제처럼 남게 됐지요. 그런 측면에서 내가 노무현재단 이사장맡고 있으니 이사장으로서 그 역할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 그래서 책을 내라는 권고 받았어요.
처음에 주저한 것은  솔직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또 하나 너무 바쁘게 앞만보고 살다보니 충실하게 여러가지 기록을 꼼꼼하게 해왔던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주저함이 있었죠.
꺼려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결심하게 된 배경은 2주기를 맞는 상황에서 우리가 노무현시대 참여정부를 극복하고 그 분이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책무인데 심각한 민주위기감, 희망 꿈꾸는 사람들에게 참여정부 기록 남겨서  한발 더 나가고 발전된 세상 만드는 토대를 본인이 쓰는 책에서 지혜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런 차원에서 필요한 것 같았어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거죠. 집필은 2달 전 시작했고.

문= 또 야권통합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들이 중요하게 우리 시대에 과제, 화두처럼 대두된 상황이니까. 그 과정이나 작업에 통합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기꺼이 나서서 해야한다는 책무를 느끼고 있어요. 야권통합에 필요한 시민으로서의 역할, 한 축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지혜와 발판같은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문=예전에 대통령이 나가서 사람들 만나시면 사람들과 호흡이 잘 맞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가 더 걱정돼요. 그러면 호흡이 잘 맞고 흥이 나니까 말씀도 길어지고 시비가 걸리는 말이 그때 나올 때가 있거든요. 난 긴장되지. 현장에서 들으면 아무 문제도 없고 관객과 호흡도 착착 맞는데 나중에 특정부분만 딱 떼서 신문에 옮겨놓고 보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가 나와요.
김=뭔지 알것 같아요. 오늘 제 토크콘서트에 풍자한 것도 한 부분만 떼내서 비난하자면 ‘김제동 검찰 반박’ ‘김제동 검찰에 비아냥 일갈’ 이런식으로 나올거아녜요. 더 잘 아시잖아요. 이런 무대는 처음이셨죠?
문=네. 데뷔한거네요.
김=처음엔 긴장하신 것 같았는데 바로 풀리시더라고요.
문=전 기본적으로 대중공포증, 무대공포증이있어요. 울렁증같은것. 그나마 맡고 있던 직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에 서서 말해야하는 게 많아서 극복하고 좋아진 편이에요. 요즘은 세대가 달라지면서 말하는 것에 익숙해졌어요. 우리 땐 말할 기회도 없이 자랐는데. 요즘은 뜸들이는거 싫어하고 바로 탁탁 표현이 되고 그래요. 우리는 무슨 말하려면 속으로 생각하고 정리하고 뜸들이고 그러는데.

김=체구가 정말 좋으세요. 양복도 군복처럼 입으시는 것 같고.
문=제가 학교다닐 때 고교시절에도 정학받고 대학와서도 구속, 제적 등 처벌을 받았는데 상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군대 때. 군대 가니까 상을 막 받게 돼요. 그래서 사람들이 공수부대 체질이라고 말뚝박으라고 하기도 했어요.
김=와, 공수부대에서 말뚝 박으라 할 정도면 정말 군인이시네요.
문=변호사 할 때 한동안 대학생들에게 병역위반 기소가 줄을 이었던 적이 있어요. 대부분이 수배중이라 병역 통지서가 갔지만 본인에게 전달되지 않은거죠. 그게 돼야 병역기피가 되거든요. 그래서 대통령과 제가 그 건을 맡아 변호하면서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았어요. 그러다보니 나중엔 기소를 안하더라고.
김=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그런식으로 기소한거였네요.
문=그렇지요.
김=술은 많이 하십니까?
문=옛날에는 꽤 마시고 즐겼는데 어느 순간 줄더라고요. 요즘은 몇잔 못마셔요.

  

5월이다. 이 땅의 사람들 중 5월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들이 많을 테지만 나 역시 그렇다. 별 볼일도 없던 촌놈, 가진 거라곤 마이크 잡는 재주밖에 없던 내 이름 앞에 지금은 많은 것이 놓여 있다. 깜냥도 되지 않는 내게 많은 분들이 무겁고, 과분하고, 부담스러울 정도의 사랑과 의미를 입혀주셨다. 굳이 따져보자면 2년 전 5월,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그분이 떠난 그날. 나는 이젠 ‘슬픈 노무현’은 보내드리고 ‘기쁜 노무현’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21일, 노란 바람개비가 마을어귀부터 사람들을 맞는 봉하마을을 찾았다. 6000명의 사람들 앞에서 ‘토크콘서트’를 열고 한바탕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심지어 머리에 물을 뿌리고 ‘아파트’까지 부르며 ‘오버’했다.
사람들은 크게 웃었다. 아저씨의 오랜 동지인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59)께서도 객석에 앉아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과장하자면 내 인생 최고의 무대였다.

-사실은 좀 고민했어요. 덥석 토크콘서트를 하겠다고 해놓고는, 묘역 앞에서 이래도 되나 싶었거든요.

“아니에요. 정말 좋았어요. 제가 20일 창원 추모제에 갔는데, 웃으면서 즐겁게 하자고 했는데도 자꾸 숙연해지는 거예요. 추모시도 낭송하고 이러니까 여기저기서 훌쩍이고. 그런데 오늘은 할 이야기 다 하면서 유쾌하게 웃고,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중요한 메시지를 안고 갈 수 있잖아요. 이런 추모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날씨도 정말 좋았어요. 비온다고 걱정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엄청나게 왔어요. 게다가 초반에 제동씨가 다 쓰러뜨렸잖아요. 원래 2주기 추모는 지난해처럼 슬퍼하고 분노하는 식이 아니라, 밝게 웃으며 희망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비전을 갖고자 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 못하는 새로운 발상을 제동씨가 보여줬어요. 전 오늘 문화적 충격, 큰 쇼크를 받았어요.”

-이제 봉하마을은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아까도 들어오는데 보니까 할아버지와 아빠, 엄마, 아이까지 3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다리더군요. 비장함도 아니고, 누구를 지지하니 마니도 아니고, 그저 가족들이 함께 대화 나누고, 그렇게 모일 수 있는 것. 그런 매개가 되는 대통령을 가지고 있는 건 퍽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동씨가 그분들을, 각기 다른 세대를 한데 묶고 움직이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걸 시작하게 됐어요?”

-시작한 지 2년 됐는데, 저에게 ‘많은 시간을 갖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 덕분에 이 콘서트가 성사됐어요. 흐흐흐. 여야를 막론하고 늘 코미디거리를 제공하는 여러 분들 덕에 이 자리에 오게 됐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전 진지한 건 잘 못하는데 웃으면서 하는 건 좋더라고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이라는 책도 있잖아요. 그게 효과도 훨씬 크죠. 정색하는 것보다 상대를 더 무력화시키거든요.”

-아저씨가 살아계셨다면 이런 공연하고, 다들 모여 노는 것 싫어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묘역을 꾸민 개념도 그런 거예요. 묘역에 너럭바위를 얹어 놨는데, 그건 아이들도 올라가 장난치고 놀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설계했어요. 임옥상 선생이 만든 흉상의 기본 개념도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다가가 사진 찍고,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을 담은 거예요.”

-대통령님과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뵈신 거죠? 어떠셨어요? 주변에 계셨던 분들 중에 가장 오랫동안 함께 지내오신 건데….

“제가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노무현법률사무소를 하고 계셨어요. 당시 부산에서 가장 젊은 변호사였는데 대화를 나눠 보니 소탈해 권위의식이라곤 전혀 없었죠. 우리하고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첫날 뜻이 맞아서 바로 사무실을 같이하게 됐지요.”

-책 쓰신다고 하시던데 언제 나오나요?

“한 4분의 3 정도 썼는데 진도를 못 내고 있어요. 바쁜 때랑 맞물려서. 원래는 2주기에 맞춰 내려고 했거든요.”

-어떤 내용인가요?

“대통령과의 인연, 추억, 참여정부 때의 이야기들을 담았어요. 우리가 1주기 때 <운명이다>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자서전을 펴냈죠. 남은 이들도 참여정부 때를 되돌아보면서 기록하고 증언하고 성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내가 가장 대통령님을 오래 겪었으니 나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있었어요. 조만간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나올 겁니다.”

-'운명'이란 제목이 의미심장해요. 

“노 대통령께서도 유서에서 운명이란 말씀을 하셨고 자서전도 그 제목으로 펴냈죠. 생각해보면 제 삶의 길목에서 노 대통령을 만났고 그분을 만난 것이 제 삶에서 결정적인 변곡점이 되어서 이후 제 삶을 이끌어왔어요. 변호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는데 청와대도 가게 됐고, 결국 지금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님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많이 이야기하셨는데 현실은 참 먼 것 같아요. 특히 젊은이들에겐 너무 힘든 세상인데, 살아계신다면 젊은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셨을까요? 

“그분이 정치인생 내내 강조했던 비전과 핵심이 그거였죠. 사람 사는 세상이란 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도, 소외된 사람들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누구나 당당하게 인간적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하거든요.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 배려하고, 연대하고,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는 일들에 참여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거죠. 늘 그런 당부를 해 오셨고 그걸 말씀하고 싶으셨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변호사님께서 지금 준비하시고, 계획 중이신 게 있으실 텐데요. 

“장기적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노무현정신의 가치를 계승, 확산, 발전시키는 것이죠. 그게 재단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정치적인 국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당장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잖아요.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과제가 절박하고, 그러기 위해선 국민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하죠. 그 희망을 주려면 야권이 통합하거나 연립정부 같은 방안을 통해 하나로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해요. 시민사회가 논의에 참여해서 중재역할을 하기도 하고 장도 마련해줘야죠. 저는 도움이 된다면 그런 역할, 야권통합과 시민사회운동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니지만 생전에 노 대통령을 뵌 적이 있긴 하다. 재임시절 청와대에 행사가 있어서 들어갔던 때다. 그때 대통령께선 나에게 그러셨다. “<느낌표>하고 <아시아아시아>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아시아>는 내가 진행한 게 아니었다. 워낙 얼어 있던 바람에 그 자리에선 말도 못했고, 나중에 뵙게 되면 따질 작정이었다. 그런데 결국 여쭤보지 못했다. 

-특전사 출신이시라면서요? 양복 입으시는 스타일이 특전사 군복 입는 식이에요. 군대 계실 땐 주특기가 뭐였죠?

“기본적으로 산악점프 전문 부대였고, 대외적인 주특기는 폭파였어요. 고교시절에 정학도 받고 대학 와서는 구속, 제적되면서 문제가 많았는데 군대에서는 상복이 터졌어요. 군대 가니까 이런저런 상을 주면서, 사람들이 공수부대 체질이라며 말뚝 박으라더군요.”

-들을수록 타고난 군인정신으로 무장하신 분이네요. 그런 분을,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들이 좌파라고 하는 세상이네요. 이게 완전 코미디죠. 

사실 토크콘서트 전에 사저를 방문해 30분 정도 권양숙 여사를 뵈었다. 나는 집앞에서 펼쳐지는 콘서트에 못 나오시는 권 여사를 위해 3분의 1 정도를 그분 앞에서 풀어놨다.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던 셈이다.
시답잖은 내 이야기에 권 여사께선 많이 웃어주셨다. 난 덮어놓고 고자질과 푸념부터 시작했다. '“윤도현씨 정말 비겁하고 나빠요.” 그랬더니 권 여사께선 “두 분이 사이가 안 좋으세요?”라며 놀란 듯 물으셨다. “저랑 같이 방송하잖아요. 그런데 의리 없이 자기 혼자 CF를 세 개나 찍었어요.” 턱없고 황당한 내 푸념에 권 여사께선 한참을 웃으셨다. 그러면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재미있어요?”라며 연방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셨다.
다행히 표정도 예전보다 밝아지신 듯했다. 권 여사는 “세월이, 그 사람이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하시다가도, 바깥을 바라보며 “이렇게 많이들 오셨는데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해서 어떡하나” 하고 걱정스러워하셨다. 또 “저녁을 대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쑥떡을 권하셨다.
나는 “걱정 마세요. 공연 전에 저 원래 아무것도 안 먹어요”라고 대답하면서 쑥떡을 무려 7개나 집어먹었다. 나오는 길에 비서관들은 “이렇게 웃으시는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뵌다”고 귀띔해줬다. 괜히 뭉클했다.

그 누군가가 나로 인해 웃을 수 있고, 잠시 행복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그럴 때마다 이 일을 정말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나 하나 망가뜨려서 여러분들이 웃을 수 있다면…. 그래, 이건 내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