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남우 하정우를 만났습니다.
멋지고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그는
결코 꽃미남도, 순정만화 주인공같은 체형이 아닌데도
스타일과 분위기만으로 간지 쩔고 남성미넘치는
정말 남자중의 남자였습니다.
이날 대화는 주로 김제동씨가 하정우씨에게 연애상담하는
분위기 비스므레 했지요.
2시간 좀 넘는 인터뷰 시간이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진행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아래는 이날 대화의 전문입니다.
그리고 마저 싣지는 못했습니다만
인터뷰 후반에 하정우씨가 들려준 자신의 장난 무용담은
정말 책을 한권 써도 될 정도로 화려합니다.
김-(범죄와의 전쟁)사투리 완전히 잘하시던데요. 연습을 어떻게 한거에요?
하-윤종빈 감독에게 사투리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촬영 들어가기 3개월 전에 최민식 선배와 리딩하면서 연습했죠. 다른 작품에 비해 리딩을 많이 했어요. 전담 사투리 코치와 함께. 영화에서 제 오른팔로 나왔던 김성균씨가 제 전담 코치였어요.
김-욕도 아주 찰지게 하시던데. 중국집에서 소주로 입 헹구는 장면 있잖아요. 그건 진짜 술꾼들만 할 수 있는건데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하-제 아이디어에요. 기사식당인가 어디선가 봤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강렬한 인상을 받았죠. 나중에 써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거에요 그 촬영할 때 굉장히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거든요. 윽박지르지 않고 잔잔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상대방을 완전 무시하며 깔아뭉개는.
김-실제로 그 느낌이 정확하게 전달됐어요.
하-입안 헹구는 모습이 강렬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난 누구 아이디어일까 생각했었어요. 보통 보면 식사나 함께 하자고 할 때 그 앞에서 가글 하는 것은 너같은 놈이랑은 안먹겠다는 거잖아요. 그게 확 왔어요. 정말 잘 표현이 됐어요. 제가 예전에 조폭들 모임 사회를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하-어. 정말요
김-레크리에이션 강사 시절이었어요. 양쪽 계파가 모인 행사였는데 제가 모르고 간 거였어요. 거기도 총무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들 하는 말이 어미가 잘 안들려요. 존대인지 반말인지 거의 잘 모르겠더라고요. 담배를 물고 불을 찾길래 붙여줬는데 한모금 빨더니 발바닥에 대고 끄더라고요. ‘너같은 놈이 붙여준 담배…’라는 무언의 압박이 확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웃기든지 손가락 잘리든지 알아서 하쇼” 그러는거에요. 죽는줄 알았죠. 뭘해야하나. 무대에 오르면서 생각한게 확 까놓고 솔직하게 하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마이크 잡으면서 ‘지금부터 문신 콘테스트 하겠다’고 했어요.
하-우와. 많이 웃어요?
김-양쪽이 서로 3백만원씩 거는데 자기들끼리 경쟁이 붙어서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전 그 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들을 사람 몸에서 다 봤어요. 용이 있는데 왜 구름이 없냐고 했더니 맑은 날 팠다고 해요. 왜 잘 안보이는 겨드랑이 밑에 거북이를 그렸냐고 했더니 거북이는 원래 습한데를 좋아한대요. 그날 끝나고 가는데 그 총무가 그래요. “내년에도 부탁하입시다”. 그리고 제가 4년을 내리 했어요.
김-그리고 러브 픽션은 완전히 다른 느낌의 영화던데요. 두개가 완전히 확 달라지는데 힘들지 않나요? 찌질하면서도 순수한 남자의 모든 것이 표현되던데요.
하-낙차가 커서 더 흥미를 갖고 연기할 수 있었어요. 이 두 작품 모두 오래 전부터 준비를 했던 것이라 가능했죠. 씨앗을 일찍 심어서 어느 정도 생각하고 품고 있었어요.
김-어떤 사람은 한 배역에서 빠져나오려면 오래 걸린다고 하잖아요. 어떠세요?
하-그게 영화에서 캐릭터가 습관이 배서 그래요. 습관을 버리는 것이 힘든거죠. 저같은 경우는 그 다음 작품이 있고 계속 진행해서 그런 후유증은 크게 없었어요. 굳이 꼽자면 <황해> 때였어요. 11개월간 촬영했는데, 구남이란 인물을 연기하면서 그것이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제 일상에 침범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구남이처럼 밥먹고, 화내고 이야기하고. 내 실상의 모습에 그것이 배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어요. 말투도 그렇고, 욕도 그렇게 하고. 그 습관들 버리느라 힘들었어요.
김-굉장히 우울한 캐릭터잖아요. 그런게 생활속까지 베어들어 올 때는 안 힘드나요?
하-힘들죠. 그래서 그게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요. 그래서 <황해> 찍을 때 웬만한 거리는 다 출퇴근했어요. 숙소인 낯선 여관에서 자는게 너무 싫더라고요. 양수리는 물론이고 대전에서도 출퇴근했어요.
김-그만큼 몰입됐다는 증거겠네요.
하-웬만한 배역은 메이크업 지우고 거울 보면 현실로 돌아왔구나 싶은데 구남이 역할은 수염을 기른 상태로 있어야하니까 세수를 해도 안지워지고 그대로 있는거였죠. 그 느낌. 지루했어요.
김-여자를 좋아할 때도 그렇잖아요. 뭘 해도 그쪽으로 연결되고. 이번 영화 <러브픽션>도 사랑에 대한 그런 감정이 나오잖아요. 뭘해도 연결되다가 나중에는 슬슬 지루해지는. 그런건 감정이입이 잘 되나요?
하-그런 감정은 낯설음은 없어요. 연애는, 사랑은 신이 주신 선물이자 저주같아요. 사랑하는 순간 그 사랑을 갖기 위해 무모하게 도전하잖아요. 갖는 순간은 그 맛이 떨어지고. 이 비극적인 감정이 어디있어요. 이번 영화는 그런 과정이 순서대로 돼 있어요. 사랑의 정점에 불을 태웠다가 점점 식어가는. 남자는 식어가는 것에 대한 명분을 자꾸 찾게되죠.
김-맞아요. 명분.
하-그 포인트는 겨털이었던 것 같아요.
김-남자는 그래요. 나는 순정적이고 문제없다. 그런데 그냥 헤어지면 내가 나쁜놈 같잖아요. 그래서 명분을 찾나봐요.
하-맞아요.
김-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이 있잖아요. 그 소설하고 굉장히 비슷한 영화에요. 예고편 보면서 그런생각 들었어요.
히-그래요. 맞아요. 사랑을 하고 빠질 때도 그 사람은 그것을 인지하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상자의 매력을 찾죠. 알랭 드 보통은 그런 심리를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하잖아요. 합리화하고 이유를 찾으려하고. 그런 명분이 쌓이다보면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 오게 되는거죠.
김-사람은 누구나 자기 경험을 통해 영화를 봐요.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받아들이는거죠. 저도 연애를 할 때.
하-…
김-저도 연애 해봤어요. 굉장히 어이 없다는 표정 지으시네요.
하-아뇨. 그렇지 않은데요.
김-저도 연애 해봤어요. 물론 명분을 찾게되는 감정까지 가기 전에 다 차였던 것 같아요. 어떠세요?
하-전 개인적으로 아예 그 전에 끝내든지 러브픽션처럼 끝장을 보든지 그래요. 중간단계는 없는 것 같아요.
김-좋아하면 확 가는 스타일인가요? 전 못그러거든요.
하-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먼저 고백하는 스타일이에요. 더 대시할 것 있다 싶으면 가고 안되면 스톱하죠. 안되겠다 싶은 것은 뭔가 이야기를 하는데 벽이랑 이야기하는 것 같은 싸한 느낌이 들 때죠. 나랑은 DNA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그렇지만 표현에 있어선 열려 있고 유연해야죠. 뻘쭘해하면 안돼요.
김-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죠? 여자들이 튕긴다고 하잖아요. 전 그 감을 잘 모르겠어요. 한번은 스태프들이 제 별명이라고 알려준게 전형적인 ‘고미오빠’래요. 고맙고 미안한 스타일.
하-그걸 고미오빠라고 해요? 아, 새로운 걸 배웠네.
김-전형적인 것만큼 남자 인생에서 치사하고 더러운 일이 없네요. 어쨌든 전 어떤 스타일이냐면 고백한 뒤 3일 있다 술먹고 전화해요. 그쪽에서 생각할 시간 안주고.
하-그럼 안되는데…. 실례지만 그럼 안돼요.
김-어떻게 해요?
하-버텨야 해요. 그게 너무 어려운 부분이에요. 맘에 드는 사람 있어요, 연락처 알아요. 연락하죠. 주고 받아요. 상대가 생각할거 아녜요. 관심이 있나? 동료인가? 그렇게 헤깔릴때 거기서 어려워요. 그리고 어느 순간이 지나면 빨리 고백해야 해요. 내가 너에게 연락하고 있다는 건 내가 너에게 호감이 있고 관계가 발전하고 싶다는 것을 밝혀주는 거죠. 그 다음엔 버티는거에요,.
김-안된다면?
하-글세요. 전 내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백의 형태가 뺀치를 먹었으면 방법을 달리해야겠죠. 가슴속에 새기는 것은 열번 찍어 안넘어 오는 것 없다는 거에요. 자기 최면을 걸고 더 자신감있게, 새로운 형태로 공략하는 거죠.
김-음.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좌중 폭소). 저쪽에서 한번 아니다 이러면 찌질해지기 싫고, 또 저쪽의 확신이 없는데 내가 표현하는 건 이 사람에게 부담주는 것 같고. 진짜 좋아하게 되면 이 사람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느낌이랑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이 섞이는 거죠.
하-그건 생각을 바꾸셔야 해요. 같이 결실을 맺고 편하게 해주는 거죠. 그 전에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싶어요.김-사랑한 뒤에? 편하고 좋은 오빠로 오래 보고 싶대요. 안되고 싶다는 거 아닌가요?
하-아름다운 거절이죠. 더불어 사는 세상에 맞는 거절. 저도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요. 한 인물도 떠오르고.
김-그런 경험 없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하-20대 초반의 이야기에요. 어떻게 할까 고민에 빠졌죠. 포기했어요. 남자친구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 친구가 저더러 자기한테 관심있냐고 대뜸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네’ 이랬죠. 남친있냐고 물었더니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며 묘한 빵가루를 던지더라고.
김-주워 먹을 수도 없고 아닌 것도 아니고. 뭣 같은 경우네요.
하-호감을 표현했는데 씹혔어요. 남자는 삼세번이라고 세번을 두드렸는데. 그래서 접었어요.
김-흠. 선생님 이론은 그럴싸한데 실제론 별로시네요. 하하.
하-그런 결들이 모여 30대를 맞이한거죠. 맘에 드는 사람 앞에서 무기력하고 미숙해지지만 뭔가 후배들에게 연애 코치처럼 해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그럼 선생님. 전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만나야 할까요?
하-음. 팜므 파탈같은 느낌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비욘세같은 여자랑 잘 맞을 것 같아요.
김-왜요?
하-선배님은 그 안에서 야성의 날것, 수컷같은 느낌을 빨리 끄집어내면 그걸로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잘 생기고 외모가 삐까뻔쩍해도 외모에서만 나오는 수컷 냄새는 금방 뽀록이 나거든요.
김-정우씨는 외모에서도, 속에서도 수컷 냄새 심하게 나거든요. 아실거예요. 정우씨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 ‘와, 진짜 남자다’ 싶은게. 그런 뭔가가 우러나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도대체 정우씨 안에 있는 수컷의 정체는 어떤거에요?
하-글세 남자답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 남자답다는 말의 기준은 모호할 수 있어요.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제가 생각한 남자다움은 뭐라고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 음. 남자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게 생각하는 것과 통하는 것 같아요. 정직하고 바르게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서 행동하는 거죠. 사람을 대할때 진정성으로 대하는 것. 이게 남자다움이라고 생각해요.
김-스스로에 대한 확신, 그리고 부끄러움이 없을 때 당당한 남자다움이 펼쳐지는 것 같아요. 그래야 남들 시선에서도 자유롭죠. 그건 결국 인간다움, 여성다움과도 통해요. 테레사 수녀가 쓰신 글을 보면 기독교인은 더욱 기독교도 답고, 불교도는 더욱 불교도다워야 한다, 그럼 결국 모두가 통한다고 해요.
김-안그래도 하정우씨 인터뷰한다 그랬더니 주위에서 여자들이 좋겠다고 난리났어요. 그래서 그랬죠. 넌 상대방 입장이 돼서 생각해보라고. 내가 좋겠냐고.
하-그러게요. 제가 여배우도 아니고.
김-바로 직전에 손예진씨를 했어요. 그때보단 많이 다운돼 있어요.
하-(금연인 카페 내부를 쓱 둘러보며) 우리, 실수로 필까요?
김- 하하. 그래요. 몰랐던 거에요. 들켰을 땐 다시 안피겠다고 하면 되죠. 낮술하세요?
하-너무 좋아해요. 정말 낭만적이죠. 살아있음을 느껴요. 행복한 순간이죠.
김-주량은요
하-소주 3병정도가 딱 좋아요. 그럼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 가요. 어제도 막걸리 마시고 잤는데 너무 좋아요.
김-오늘 인터뷰만 아니면 바로 달릴텐데. 언제 한번 먹죠.
하-저도 잠원동 살아요. 제가 서래마을로 갈게요.
김-영화에 보면 시를 읽어주잖아요.
하-장문의 편지요?
김-그런거 해요?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하-편지써요. 좋아해요.
김-손편지만의 매력이 있죠.
하-공중전화, 손편지. 이런 아이템들.
김-공중전화 하면서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심장도 툭툭 떨어지는. 그런 매력이 있잖아요. 돈 다 됐다, 끊는다 그러면서 끊기잖아요. 급한 마음에서 나누는 대화. 그때의 감성들이 그리워요.
하-저도 십대 후반에 그걸 경험했어요. 대학 들어가서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그때를 경험했다는 것이 감사해요. 군대 가서도 공중전화 30분씩 기다려서 하고.
김-기다릴 때 감정이 전화보다 더 좋잖아요.
하-군대에서 했던 좋은 경험은 기다림이었어요. 공중전화 기다리고 휴가 기다리고. 달력이랑 수첩에 엑스표시 하면서 하루하루 기다리고. 요즘은 약속을 해도 금방금방 너무 쉽잖아요. 예전엔 어디서 만나자 그러면 하염없이 기다리고 그랬어요.
김-어디쯤 가고 있을까, 어디쯤 오고 있을까가 궁금하지 않은 시대가 됐어요. 그땐 약속해서 안오면 사고가 났나,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해하며 기다렸잖아요. 그런 기다림의 감성이 없어진 시대가 됐어요. 기술의 발달은 좋지만 그런 감성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하-맞아요. 그런 게 없어요. 마지막 남은 건 비행기인데, 이제 비행기 안에서까지 전화가 되면. 뭔가를 잃었으면 채워지는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있을까 싶어요.
김-그러게요. 뭐가 있을까요.
하-모든 것이 휩싸여서 영화나 음악도 그런 템포로 만들어지잖아요. 안타까운 부분이죠. 그래서 그림 한점이 그런 빈 부분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봐요. 런던에서는 한때 설치미술이 굉장히 붐을 이룰 때 그걸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더라고요.
김-정우씨 그림도 그리잖아요. 그림을 그릴 땐 어떠세요.
하-식물이 되는 느낌이죠.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확실한 건 제 자신을 위해 그린다는 거에요. 내 자신을 달구고 위로하고 치유를 받아야 할 때 그림이 주는 의미가 크죠.
김-전 요즘 방전됐다는 느낌을 받아요. 다 집어치우고 사랑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하-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범죄와의 전쟁>을 찍을 때 최민식 선배에게 너무 감사했어요. 그전에 젊은 나이에 현장에서 주연배우로 있으면서 나에게 뭔가 이야기해주고 혼내기도 하고 기대고도 싶은 그런 사람이 간절하게, 무의식적으로 필요했어요. 스승으로 선배로 최민식 선배가 있으니까 너무 든든했죠. 난 그저 따라하기만 해도 되겠구나 싶었고. 어른의, 선배의 고마움을 느꼈던 작업이었어요. 제가 선배랑 함께 해서 영광이고 감사하고 축복이었다고 했더니 낯간지럽다고 하세요. 제겐 그만큼 그런 존재가 필요했던 시점이고 마친 잘 맞물렸던 것 같아요.
김-심리적으로 기대고 싶은 그런 시점에 최민식 선배가 정확히 나타난거네요. 똑같은 노래를 들어도 훅 다가오는 느낌이 있을 때가 있잖아요.
하-그럼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김-있어주는 것만으로 고맙고.
하-주현 선생님에게도 그런 느낌 많았어요. <구미호가족> 할 때 저를 너무 챙겨주시고 가르쳐 주셨어요. 그래서 전 제 분량 없는 날도 세트에 가서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촬영장 근처 동네 선술집이나 밥집에서 밤새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요. 어떤 배우가 되고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또 선생님 당신이 제 나이에 어떻게 하셨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저에겐 그게 어마어마하게 큰 가르침이었죠.
김-그렇게 해주는 분도 흔치 않긴 하죠. 어쨌든 그걸 받아들이고 불편해하지 않고, 그게 정우씨의 그릇이기도 하죠. 복이기도 하고.
하-맞아요. 아버지도 배우니까 아버지 생각도 나고 그래요. 그래서 선생님들도 더 챙기게 되고. 저희 아버지도 촬영장에서 심심하고 외로우실 것 같거든요.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최민식 선배가 가끔 그 말을 써요. 그게 가슴에 팍 와요. 그럴 때마다 잘 해야겠다 싶어요.
김-그럴 수 있겠네요. 그런 질문 많이 받겠지만, 연기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하-아버지가 서른 셋에 결혼하셨어요. 결혼하고 가족들을 먹여살리면서 작품활동 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겠다 싶죠. 점점 아버지를 알아가는 거라고 할까요. 그 느낌 참 짠해요. 연민같은 것도 있고.
김-존경과 동시에 따라오는거죠.
하-<서울의 달> 찍을 때 민식이 형이 제 나이였고, 제 아버지가 민식이 형 나이였어요. 참 묘하면서 느낌이 좀 짠해요.
김-어제 한강 갔는데 강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어요. 강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있는데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버지로부터 죽 내려오고 있는데 정우씨만의 새로운 물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어떤가요? 배우로서, 한인간으로서 정우씨가 트고 싶은 물길은 어떤건가요.
하-글쎄요. 보편적이고 상투적인데. 이순재 선생님 나이나 아버지 나이때까지 거침없이 연기하는 배우였으면 해요. 롤모델을 찾자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불길이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지금 영화에 대한 감정은 어떤가요. 영화를 통해 상처받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
하-많이 있죠.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많은 것을 할 수 없어요. 어떤 감독의 오브제로서 거기까지인거죠. 뭔가 많은 열정과 창조적인 것을 뿜어내고 싶어도 감독의 편집, 의도에 따라 그게 어마어마하게 다른 길로 갈 수 있워요. 제가 뭘 할 수가 없어요. 거기서 오는 그것을 인정하고 작업해야 하는 답답함과 아쉬움이 있죠. 뭔가를 더 하고 싶은데, 그 마음을 알겠는데 몰라주고 그걸 당연시해서 무시를 당할 때. 그때가 가슴아파요. 롤이 커지면서, 위치가 달라지면서 주연 배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런 책임에 놓이게 되고 그랬을 때 나는 정말 이렇게 하려고 했던건데 그것이 오해받고 무시당하면서 나 괜한짓하는구나, 그래 내 밥그릇만 챙기자 이런 마음을 먹게 돼요. 그때가 제일 힘들고 맥이 풀리죠.
김-살면서도 그럴 때가 많아요.
하-그렇죠.
김-감독 해보고 싶은 그런 느낌도 있죠? 자유롭고 권한이 많은 만큼 책임도 많은 것 같아요. 그 책임을 기꺼이 지는 것도 자신의 몫이고.
하-또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차라리 뭘 몰랐을때 연기하는게 훨씬 마음편했다는거에요. 이제 알고 싶지 않은 것,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면서 작업해야 할 때가 있어요.
김-투자 뭐 이런거요?
하-그것도 포함될 수 있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각자의 파트들이죠. 예전엔 뭘 모르니까 오로지 작품에만 신경썼는데 지금은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이고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들리고. 그래서 그게 힘들어요. 그런 걸 모른척 해줘야 하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 사람이 시행착오를 겪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고. 그게 현장에서 속 터지고 답답한 일이에요.
김-결이 고와서 그런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신경 많이 쓰죠?
하-그런 것 같아요. 단순히 영화 찍는데 캐릭터 만들고 빠져나오는게 힘든게 아니고 사람과 지내는게 힘들어요.
김-어디서나 그렇죠.
하-맞아요.
김-몰라도 되는 걸 알았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과 무기력감. 연애도 삶도 다 그래요
김-좋은 영화다 싶은데 관객이 외면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때는 어때요?
하-그건 분명히 문제가 있었던 거에요. 만듦새가 이상한데 잘돼요. 그럼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영화는 사람과도 같은거에요. 분명히 후진영화, 재미도 없는 영화에요.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어마어마하게 흥행하고 사람들은 열광해요. 왜그럴까요. 분명한 이유가 거기 있어요. 반대로 너무 훌륭하고 흥행이 보장된 듯 보이는 작품이 안돼요. 그것 역시 이유가 있죠. 스토리나 기술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그걸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가짐, 인생철학 등이 다 연결돼 있을 수 있죠.
김-그런데 한명이라도 영화를 보고 마음에 변화가 있고 감동했다면 그자체로 가치있는거죠.
하-그렇죠. 그건 또 다른 문제인거죠.
김-한 감독님과 여러작품을 많이 했어요. 윤종빈감독도 그렇고 나홍진 감독도 있고.
하-그 분들과는 좋은 영화가 어떤건지, 좋은 연기가 어떤건지에 대한 생각이 일치해요. 그래서 연달아 작품을 함께 하는 일이 생기죠.
김-정우씨한테 그런건 있나요? 나는 아닌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덧씌워놓은 이미지. 저같으면 종북좌파니 착하니 하는것들. 저 아니거든요.
하- 전 잘 못느껴요. 그냥 남들이 저를 보고 느끼는 것을 즐기는 편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고, 그리고 제 캐릭터를 통해 끊임없이 뭔가를 보여줄 수도 있고.
김-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전에 술먹고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강아지가 배를 다 드러내고 제 앞에서 누워요. 그런데 난 이 개만큼도 용기가 없구나 싶었어요. 사람들에게 날 드러낼 용기가 없어요.
하-생각을 고쳐먹었던 지점이 있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단점을 숨기기보다 장점을 드러내겠다, 그리고 거기에 에너지를 쓰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전에 그림을 그리면 남들이 볼까봐 창피해서 쌓아놨는데 어느 순간 느꼈죠. 내가 자신감을 갖고 그리고 그속에서 매력을 찾고 느끼고 소통하니 자신가밍 생기더라고요. 연기도 마찬가지죠. 기준에 따라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태어난대로 뱉을 수 있는 것, 그것대로 내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후에 내 연기도 훨씬 자신감있게 표현하게 됐어요. 물론 혹평을 받거나 단점을 지적받을 수 있죠. 인정해요. 그런데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는 장점과 진심이 있음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갖고 말할 수 있어요.
김-단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가장 큰 용기고 치유라고 하잖아요. 비하나 무시가 아니라 그대로 인정하는 것.
하-그런데 어렵기는 해요. 그것을 끊임없이 단련하고 인내하는 거죠. 그리고 어떻게 소화하면서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고요.
김-사람들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아요. 살다보면 내 모든 것을 받아주고 알아주는 내밀한 지지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게 뭘까요. 사람이라면.
하-늘 변하지 않는, 어렸을 때 친구들이죠. 종교도 그렇고. 기도할 때가 좋아요.
김-전 한 여자의 내밀한 지지를 받고 싶어요. 흑. 저 어쩔 수 없죠?
하-맞아요. 그것도 중요해요. 남자가 돈 버는 목적이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결실을 맺는거죠. 남자가 돈 벌어서 어디다 쓰겠어요. 여자한테 쓰는거죠.
김-맞아요. 남자가 하는 모든 행위의 궁극은 여성이에요. 그런데 정우씨가 여성에게 다가서는 방법은 뭔가요? 누구는 노래 잘하고 이러잖아요.
하-유머감각? 제가 말빨이 좋아 선수기질이 있어요.
김-정우씨가 말을 참 찰지게 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자기 주도권을 확실히 가지고 있죠. 사람을 다가오게 만드는 능력이랄까. 게다가 무표정하니까 그런 능력이 배가 되죠.
하-감사합니다.
김-에이. 짜증나서 그래요. 이 사람이 뭘 안갖췄나 싶어서요.
하-학교 다닐때 장난치고 밑도 끝도 없는 말 던지는데 다 웃고 그러는거예요. 제가 연영과 갔거든요. 다들 연기에선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모인건데 자신감을 갖게 된거죠. 내가 개그 쪽에서는 뒤지지 않는구나 하고요. 저 과회장도 했어요. 말 많이 하는데도 계속 빵빵 터지니까 회의를 다섯시간씩 한 적도 있어요. 거의 뻥이고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인데.
김-유머의 기본은 80%가 뻥이에요.
하-제가 장난치는 것 너무 좋아해요. <범죄와의 전쟁> 찍을 때 장난하고 싶은 욕망이 제어할 수 없게 올라오더라고요. 해서는 안될 장난들도 하고. 어마어마했죠.
김-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나요.
하-즐거웠어요. 이런 인터뷰 처음이라. 인터뷰라기보다 선배와 만나 이야기하는 거 좋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3월에 계속 괜찮으니까 술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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