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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크

캠퍼스 드라마 어떻게 변천해 왔나

by 신사임당 2016. 2. 19.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중 하나는 <치즈 인 더 트랩>입니다. 순끼 작가가 쓴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간만에 보게 되는 캠퍼스 드라마입니다. 

최근 몇년간 캠퍼스를 본격적인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청춘의 선남선녀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캠퍼스 생활이 그려진 드라마는 잘 볼 수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 30대 중반 이상 세대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던 시절에는 캠퍼스 드라마가 꽤 많았습니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랑이 꽃피는 나무/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드라마는 제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이던 1980년대 중반에 했던 KBS의 <사랑이 꽃피는 나무>입니다.

캠퍼스 드라마의 원조랄 수 있는 이 작품은 당시 대학생들보다 오히려 중고생들에게 더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배출된 최수종, 최수지, 이미연 등은 당대의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제목처럼 가슴 설레는 사랑이 꽃피어나는 캠퍼스. 사실 이 드라마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의대생, 미대생이던 주인공들, 낭만과 자유가 넘치는 캠퍼스, 대학생활의 전부인 주인공들의 사랑과 우정은 판타지가 돼 청소년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엄혹하던 그 시절 대학가의 현실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죠. 



내일은 사랑/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리들의 천국/ 경향신문 자료사진



무채색 안방극장에 알록달록한 천연색을 입힌 듯한 이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청춘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 초반에 나란히 선보였던 <우리들의 천국> <내일은 사랑>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 작품들 역시 당대 스타의 산실이었습니다. 장동건, 염정아, 이병헌, 박소현, 고소영 등이 이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어 <마지막 승부> <느낌> <남자셋 여자셋> 등 나오는 캠퍼스드라마 마다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 시대였고,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린데다 X세대라는 신인류가 등장하면서 달라진 사회분위기를 반영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드라마는 청년층에게도 호응을 얻었습니다. 여전히 드라마의 주된 동력은 싱그럽고 풋풋한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청춘의 사랑과 우정이었지요. 여기에 가족과 미래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 등으로 이야기의 폭은 확장됐습니다. 자유와 세련됨까지 더해진 이들 드라마는 이 시절 대중문화의 트렌드세터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이같은 시기를 거쳐온 많은 청소년들은 어른들로부터 "대학만 가면 된다" "대학에만 입학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막연하고 뜬구름잡는 것 같은 이 이야기가 이들 드라마를 통해 형상화됐고, 오히려 공부에  매진하는 동기로 작용했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모순입니다. 


제가 특히 좋아했던 캠퍼스 드라마는 90년대 후반 방송됐던 <카이스트> 입니다. 20대 초반에 겪음직한 갈등과 학업의 고충,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 등 리얼리티를 제법 살려냈었죠. 이 드라마에서 처음 봤던 배우 이은주에게 얼마나 제가 반했었던지..... ㅠㅠ



논스톱 /경향신문 자료사진



캠퍼스 드라마가 막을 내렸던 것은 아마도 지금부터 10여년 전인것 같습니다. MBC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이 대학을 주된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끝자락이었었죠. 시트콤이라는 장르의 특성에 맞게 코믹하고 발랄하게 대학생의 삶을 풀어갔지만 이 시트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황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결코 코믹하고 발랄할 수 없습니다.. 

고시생으로 등장했던 신화의 멤버 앤디의 대사 기억나시나요?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한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외침. 당시의 참담한 현실을 반영하던 웃픈 대사였습니다. 


이것이 그 전조였을까요. 이후 청년들이 더 처참해진 현실에 맞닥뜨렸음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숫자만 봐도 그당시 '청년실업 40만'이라던 관용어구는 현재 '청년실업 100만'으로 그 부피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이같은 현실 때문인지 풋풋한 젊은 날을 다룬 청춘 캠퍼스 드라마는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치즈 인 더 트랩>은 그런 공백을 뚫은 캠퍼스 드라마입니다. 간만에 푸릇한 캠퍼스, 그곳에 일렁이는 풋풋한 낭만과 발랄한 젊음의 로맨스에 가슴이 설렐줄 알았습니다만 의외의 잔혹드라마였습니다. 

몸이 녹아내릴 지경으로 아르바이트를 해대도 등록금 대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피터지게 노력하지만 스펙쌓기와 학점경쟁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런다고 취업문이 열리며 미래가 보장되느냐? 턱도 없는 현실이죠. 게다가 첩첩산중을 헤매는 것 같은 인간관계 문제까지. 


해보고 싶던 엉뚱한 일을 시도하고, 원하던 책도 마음껏 읽고, 멋진 연애도 마음껏 해보는, 과거 캠퍼스에서 당연히 누릴법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재 상상하기 힘든 판타지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서글픈 아이러니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