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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스코프

르네상스 시대에도 어벤져스가 있었다

by 신사임당 2019. 4. 25.

올해 최고의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4번째 시리즈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이 개봉했다. 예상대로 흥행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중이다. 

‘어벤져스’는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 팀으로, 마블 스튜디오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생뚱맞지만....르네상스 시대에도 어벤져스로 꼽힐만한 상상력의 산물이 있었다.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이다. 현대의 어벤져스가 ‘전투력’에서 히어로라면 당시의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어벤져스는 ‘지식’의 히어로들이다. 라파엘로는 기원전 1500년 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조로아스터부터 12세기 이슬람 철학자 이븐 루시드에 이르기까지 역사속의 천재들을 한자리에 불러내 지식과 논쟁의 향연을 펼친다. 인류 문명사의 주춧돌을 쌓아 올렸던 고대 지식인 올스타전인 셈이다. 바티칸궁 ‘서명의 방’에 있는 이 그림은 1511년 완성된 프레스코화다. 로마교황 율리우스 2세의 의뢰로 탄생하게 된 이 작품은 그리스 인문학의 부활을 알리는, 르네상스의 의미를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테네 학당  ㅣ위키피디아

그림을 봤을 때 첫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가운데 있는 두 사람이다.

 


이들은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다. 각기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두 사람은 진리의 본질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듯 하다.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티마이오스>를 들고 있으며 땅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있다. 라파엘로가 플라톤의 얼굴로 그려넣은 모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아리스토텔레스 앞에서 계단에 비스듬히 누워있다시피 한 인물은 무욕의 철학자로 불리는 디오게네스다. 그와 알렉산더 대왕의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현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알렉산더 대왕은 디오게네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말한다.

 

이 그림에는 알렉산더 대왕도 등장한다. 왼쪽 상단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이다. 알렉산더 대왕을 향해 무언가를 설파하는, 머리가 벗겨진 인사는 소크라테스, 그림 가운데 아래쪽에 턱을 괴고 생각에 빠진 사람은 만물의 기원을 불로 여긴 헤라클레이토스다. 라파엘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얼굴을 미켈란젤로를 모델 삼아 그렸다.  

 

그림 하단부에는 수학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왼쪽 아래편에서 책을 펼친 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남긴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의 등 뒤편에서 비스듬히 기울인 채 무언가를 엿보는 듯한 사람도 있다. 터번을 쓴 이 사람은 12세기에 활동했던 이슬람 철학자 이븐 루시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유명하다. 서양 철학의 역사는 중세 암흑기를 맞아 침체했으나 이븐 루시드를 비롯한 아랍권의 철학자들이 그 명맥을 이어갔다.  
이븐 루시드 뒤에서 머리에 월계관을 쓴 채 무언가를 쓰고 있는 이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다.

 

  

 

오른쪽 하단에는 허리를 굽히고 콤파스로 땅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사람은 기하학자인 유클리드다. 유클리드의 오른 편에서 뒷모습을 보인 채 지구본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은 천동설의 창시자이자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  별이 촘촘히 박힌 공을 들고 그와 마주해 서 있는 수염난 남자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고대 페르시아의 현자 조로아스터다.  조로아스터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인 록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와도 연관이 있다. 영화에는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가족들을 지칭하는 ‘파르시’라는 단어가 나온다. 파르시는 인도에 사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 혈통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이 인도에 정착하게 된 것은 7세기 즈음부터다.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으나 이슬람 제국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이슬람교로 개종을 거부한 페르시아 사람들이 인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에는 그림을 그린 라파엘로도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바로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곱상한 얼굴이다. 잘 생긴 얼굴에 성격도 활발했던 라파엘로는 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왼쪽 그림에 빨간 동그라미친 부분이 라파엘로다. 가운데 그림 참고. 오른편은 라파엘로의 초상화. 

남자들만 모여있는 듯한 이 공간엔 여성이 한 명 있다. 왼쪽 가운데 흰 옷을 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로, 로마제국 당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자연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히파티아다. 그는 뛰어난 학문적 역량과 업적을 보였으나 광적인 기독교도들에 의해 ‘사교’ ‘이단’으로 몰리면서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교황청에선 이교도를 그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지만 라파엘로는 그렇다면 그림을 포기하겠다고 맞섬으로써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58명이다. 라파엘로는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았다. 당대, 혹은 후대의 사람들의 추론에 의해 지금까지 언급한 사람들의 정체가 밝혀졌을 뿐, 여전히 절반 이상은 그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