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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토크

못다한 이야기/김제동 - 공지영

by 신사임당 2011. 9. 29.

도가니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국민을 공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도가니. 
지금이라도 조명받아 다행이지만 이 도가니가 개봉되지 않았더라면 
그 끔찍한 일이 앞으로 한동안 더 해결되지 않고 방치됐을거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칩니다.
지난 25일 김제동씨의 자택에서 작가 공지영씨와 함께 했습니다. 
그날의 대화를 정리해봤습니다



김-그런데 누나 왜 이렇게 바빠요.
공-도가니 때문에 바쁜 것 같아. 도와준다고 마음먹으니까 정말 바쁘네.
김-물론 공개적으로 소감도 많이 말하고 했지만 어때? 영화 보고 난 다음에 느낌이.
 

공-확실히 영상으로 표현되는게 장난이 아니야. 강렬하다는 것을 느꼈고 무섭다는 걸 느꼈어요. 나도 작품 쓰면서도 꽤 많이 감정이입하고 썼는데, 영화를 보니까 감정이입이 퍽퍽 되는거야. 내 일처럼.
사람들이 받는 충격은 더 크겠죠. 우리가 성폭행, 성추행, 흔히 별 생각없이 말하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화장실에서 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그게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지 다시금 생각이 들어. 계속 생각한건데, 우리나라가 성폭력 성추행에 대해 너무 관대한데, 아니 관대하다는 단어를 쓰기도 싫고, 너무 아무 벌도 안주는 거지.
이 중대성을 몰라요. 그래도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여론이 환기되면서 그와 관련한 법도 강화됐대요. 그나마 이런 영화를 계기로 여론이 환기된다면 좋겠지.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 성폭행은 공소시효도 없애고 합의할 수 있는 여지도 다 없애서 강력처벌해야 할 것 같아요.


 
김-그 성폭행과 함께 이를 둘러싸고 지적하고 있는 문제가 사회 구조적 비리잖아요. 토착비리.
공-우리나라 경제개발이 활발하면서 계층이동이 심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멈췄어. 그게 90년대 중반인것 같아요. 그 이후 공고화가 진행됐고. 중하층이 상류로 진입하려는 것을 상류층이 막아.
김-사다리를 걷어차는거네요.
 

공-그렇죠. 그런데 그게 더 심해질 것이라는게 예측됐어요. 자기끼리 혼인하고 인맥, 혈연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 가열차게 진행될 것이라고. 이 작품이 다룬 것은 그 전형적인 예잖아요.
내가 이 책을 2년전에 냈는데, 이 책을 구상하고 쓰는 동안 진행된 일들을 생각해봤어요. 촛불집회가 참가자들이 연행되고 미네르바가 구속됐지. 용산참사가 일어났고. 노무현 대통령도 돌아가셨어. 약간 소름끼치더라구. 내가 무슨 예언자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그렇게 하고 잊고 있었는데 다시 영화로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도가니가 지방도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대한민국에 펼쳐지고, 더 심해지고 있잖아. 끼리끼리 봐주고, 한줌 안되는 권력층의 횡포와 부패는 더 심해지고. 현실이 극에 달할 무렵 이 영화가 개봉되니까 나도 보면서 화가 나고 눈물도 더 나는 것 같았어요.


김-제가 두칸 옆에서 봤는데 되게 많이 우시던데.

공-계속 눈물이 났지. 공유씨도 연기 진짜 잘하더라.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고. 저절로 눈물이 나는거야. 얼마나 절절하게 연기하는지가 느껴지더라고.
김-원작이 좋았기 때문에 그럴거야.
공-그렇게 말해주면 좋지.
김-저도 영화를 보면서 느낀거지만 분하면서 고민하게 돼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하고.
 

공-그 이야기로 내 트위터 멘션이 몽땅 채워졌어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내 작품의 힘이라고 하기인 쑥스럽고 지금 시점에 이 영화가 나타났기 때문인 것 같아. 우리가 과거, 보수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그 시간을 정치와 무관하게 살았잖아요. 알아서들 하겠거니 했지요.
내 스펙쌓고, 내 생활 챙기기 바빴어. 그렇게 잊고 살다가 지금 가만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 제 마음대로야.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어디선가 저런 아이들이 짓밟히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너무 미안한 생각을 한거죠. 그런 미안함과 함께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눈감고 살지 않겠다, 이런 작은 정의감들을 표출해 주는거예요.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작은 정의가 깨어난거지. 그리고 그만큼 정의에 목말랐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려고 줄을 서는 것 같고. 트위터에 그렇게들 썼더라구.

 

김-영화 만드는데도 많이 협조했잖아요.
 

공-원작을 사간 제작사가 너무 가난하고 힘든데였어요. 그들이 이것을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었고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졌어. 그래서 대기업을 물리치고 이들에게 줬는데 막상 보니까 자금을 못 구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았죠. 공유도 톱스타인데 미안했지.
나한테 준 원작료도 다 빚일텐데.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CJ 한자락을 잡아서 촬영이 개시됐어요. 나름 다행이다 싶었지. 그런데 그 제작사가 영화를 찍는 내내 주변에서 냉소했었나봐요. 요즘같이 먹고 살기 힘든데 누가 저런 불편한 걸 보느냐 한거지. 고사장에 가보니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더라고.
이 영화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무슨 시민운동 단체같은 느낌인거예요. 작품의 내용을 알고 좋아하면서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 스태프도 모두 다 특급인데 그런분들이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거의 봉사하다시피 참여한거죠. 제작자가 나중에 그러는데 생각보다 저렴한 값에 만들었다고.
 

김-일종의 재능기부처럼 만든거네요.
 

공-굉장히 자부심 갖고 촬영했어요. 그런데 돈을 투자한 CJ안에서도 제일 천대받는 영화였대요. 아마 여러 영화에 많이 투자를 했겠지만 이 작품은 상대적으로 기대는 안했겠지. 나중에 제작보고회에는 기자들도 거의 안왔다잖아요. 그런데 막상 언론시사회로 뚜껑을 열었더니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거예요.
보고나서 분위기가 반전된거지. 입소문이 나고. 시사회 반응은 좋았는데 막상 유료 관객이 예매를 할까 걱정도 했어요. 그런데 예매 시작하고나니 놀랍더라고. 게다가 참 놀라운게 사람들이 이 영화는 전국민이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다들 그러는거예요.
 

김-왜 그럴까요?
 

공-내가 보기엔 이런거예요. 약자들이, 아이들이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당하는 것을 봤어. 그런데 그게 ‘어머 세상에 저런일이 있네’가 아니라 누구나 다들 너무 잘 알고 있던 일인거고. 그냥 외면하고 있었던 일이지.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봐요. 특히 이 정부 들어와서 4년째인데 가만히 보니 남의 일이 아닌거지. 막상 그 영화를 보고 나니 나도 곧 저렇게 짓밟힐 수 있겠구나 하는 위기의식이 전국민에게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래. 부자들은 저 영화 안볼거라고. 가난한 사람들은 보고 분노할테고.

내가 사람들을 보니 가진 것이 많을 수록 남의 눈을 의식해요. 그러니 위선이나 꼼수도 부리는거야. 당장 분노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 이제 너희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저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죠. 속아주지 않겠다, 온 국민이 보고 있다. 이런 심정?
내가 요 몇년새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화가날까 생각해 봤어요. 민주주의의 후퇴 이런것도 있는데 핵심은 이거예요. 약자를 끝까지 짓밟아. 그게 이 정부의 특징이죠. 용산부터 시작해서 모든게 다.
솔직히 보수정당과 재벌그룹은 정말 많은 것을 갖고 있잖아. 예를 들어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싸운다고 쳐봐요. 플라이급이 덤비면 헤비급이 한대 뻥 찰 수 있어. 그러면 플라이급은 나가 떨어져. 그럼 있다가 또 와서 플라이급이 덤벼. 자꾸덤비면 헤비급은 다시 한대 뻥 차주면서 ‘까불지 마라’ 이러고 가버려. 별로 상대를 안하는 거지. 그게 무림의 세계에서도 자연스러운거예요.
그런데 이 정부 봐. 약한 사람이 잽을 한번 날렸다는 이유로 가루가 될때까지 밟아. 항복은 물론이고 관전자들이 잔인해서 못보겠다고 할 때까지 밟아. 그게 이 정부 들어 4년간 반복됐어요. 김진숙도, 쌍용차도, 용산도. 온 국민을 피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기업이고 정부니까 진압도 할 수 있다고 쳐.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유도리도 발휘하고 뒤에서 해결하고 협상하는 기술도 필요한건데 이건 까불었다고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사지가 형체가 없어질때까지 짓밟아.
 
그런 뉴스를 매일 보고 사는 거죠. 그래서 요즘 글이 안써져. 너무 살벌하고 두렵고 그래요.

아마 현실의 그런 모습이 <도가니>에서 강하고 센 어른이 약하고 어린 아이를 강간하는 모습에 들어맞지 않았을까? 그런 것을 의도해서 쓴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 현상과 맞아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커지는 것 같아요.


김-언제든 우리에게도 닥쳐올 수 있는 일이라고 느끼는거죠.
공-그런 것 같아요.
김-이 형태로 우리에게 언제든 자행될 수 있는 일이고, 우린 그런 일을 당하면서 아무 소리도 지를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있는거죠.
공-그렇지. 그런 감정을 모두 함께 느끼는 것을 확인하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 공유가 느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지난 4년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김-두려움과 무력감을 공유하면서 이것이 약해지고 서로에게 힘이 된다고 느껴지는거죠. 그래서 다 데리고 가서 봐야할 영화라고 하고. 이 느낌이 한두명이 아닌거죠.
 

공-트위터 멘션에 이런 글이 왔더라고. 밤 12시인데 좌석이 반 넘게 찼어요, 일요일 오전 11시는 애매한 시간대인데도 매진이에요. 이런걸 왜 알려주겠어요. 나 혼자만이 아니구나, 우리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인 것 같아. 난 우리 국민들이 지난 10년동안 너무 편하게 아무 생각없이 살았다고 봐요. 그 때문에 지난 4년간 bbk니 저축은행이니 그렇게 난리가 나도 아무도 아무말 안하고 사는거잖아. 그런데 한편 뭔가가 점화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거예요.
 

김-저축은행사태로 당한 사람들도 약자잖아요.
공-미리 알고 빼간 것 뉴스 듣는데 너무 어이가 없는거야. 이토록 비상식적일수가 있는거야?
김-이 놈들이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싶었죠.
공-맞아요. 가만히 있으니까 바지저고리인줄 아는거지. 미국 쇠고기 수입할 때 뭐라고 했는지 알죠? 미국 소가 들어오면 싸니까 그래도 없는 사람들은 소고기 좋아하며 사먹을거라고. 그 사람들 심리가 뭐겠어요. ‘저 사람들은 조금만 배채워주면 별 소리 안해요. 자기들 먹고 살기 바빠 절대 딴데 정신 팔 틈이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거지.
김-끝까지 짓밟고 다시는 못 일어나게 하는거죠.
 

공-중세시대 잔인한 영주가 농노를 각을 떠서 죽이는 느낌? 전두환 노태우때도 그런 느낌까지는 없었어요. 그런데 요샌 너무 잔인해. 김진숙, 쌍용, 유성... 어떻게 없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말려 죽이냐는거지. 게다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아. 소름끼쳐요. 노동자도 사람이다, 이게 아니야. 계급이 공고화돼서 나타나는 거죠. 자신들은 귀족이고 노동자들은 다스리고 통치해야 하고, 본보기로 엄하게 곤죽이 되도록 때려줘야 하는 존재인거예요.

김-예전에 내가 처음 트위터에 쓴 첫 멘션이 쌍용을 잊지 맙시다였어요. 저도 막연히 두려웠던것 같아요. 경제적이든 언제든 어떤 권력이든 조직이든 이들 이익에 걸림돌이 되면 매장되고 끝까지 짓밟힐 수 있겠다 싶은거죠.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관심만이 우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거죠. 그게 이 영화를 통해 증폭되는 것 같아요.
 

공-내가 <도가니>에도 그런 구절 썼지만 왜 이 지저분한 성폭행 사건에 온 무진시의 엘리트들이 달려드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게 핵심이지. 그들은 가문의 일원인거예요. 다같이 뭉쳐서 모든 것을 지켜주는 거지. 전에도 본의 아니게 시사회때 호통을 쳤어요.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 필리핀이 우리보다 얼마나 더 잘 살았는줄 아냐고.
하지만 한순간에 무너져. 상류층의 부패 때문에. 이런 식으로 상류층이 똘똘 뭉치는데 우리가 눈감고 있고 못들은 척 하고 있으면 나라가 망하는건 시간문제라고. 영어 공부하고 고시공부하면 뭐해. 우간다, 에티오피아 공용어가 영어야. 다 영어 잘해. 그런데 그 나라가 글로벌 무대에서 뭘해? 나는 많이 살았지만 20대인 너희들이 이렇게 눈돌리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각성하라고 했어요. 이삼십대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절대로 눈감으면 안된다, 정말 큰일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지요.

그런데 고마운건. 하루에 300개씩 트위터 멘션이 달려요. 다들 앞으로 사회문제에 관심갖겠다, 나만 생각하지 않겠다... 이런거야. 어떻게 보면 각하덕분이기도해요. 이게 노무현 정부때 상영됐다면 이렇게 화제를 모았을까? 이 영화 꼭 봐야 한다면 몰려가서 봤을까? 내가 책 쓸 때만 해도 분위기가 이정도는 아니었어요.
 

김-대중들이 받아들이는 판단의 몫이라는게 있잖아. 누나가 제시한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 같아.
 

공-그러면서 눈물이 나는게 대중들이 얼마나 정의에 목말라 있는지 싶은거죠. 영화에선 정의가 맥없이 져버리잖아. 이걸 보고 같이 분노하는 것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작은 정의를 일깨워준 거지. 영화가 일깨워줬다기 보다는 우리가 몇년간 잊고 살았던 것을 일깨워준거라고봐요.
 

김-누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와요?

공-생각하는 것을 말하는거죠.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려고 하는 아줌마라고. 이 아주마가 피부로 느끼고 있으면 다들 느낄거예요. 난 특별하게 정치의식 있는 사람도 아냐. 귀찮고 싫어. 그런데도 이번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위에서 소년원에 봉사를 가는 분들이 말하는데, 그 아이들에게서 죄의식을 이끌어내기가 너무 힘들더래요. 다 재수없어서 왔다고 생각하지,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없대요. 그래서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몇달동안 부대끼며 죄의식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조금씩 전진을 하지만 TV에서 뉴스 한번 보고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대요.
다들 나와서 생각 안납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이런 식으로 반복적으로 거짓말하고 반성하지도 않잖아요. 아이들 역시 그것을 보면서 우리가 재수없던 것 맞잖아요, 저것 보세요. 이런 식이라는 거죠. 결국 재수 좋아 강해지면 넘어가는 거고, 재수 없어 걸리면 곤욕을 치른다는 생각만 남는거예요.


 

김-지금은 야만의 시대 같아요. 좌도 우도 아니고 상식과 몰상식의 대결.
공-그렇지. 상식과 몰상식. 양식과 무식의 대결이예요.
김-성희롱한 사람을 다시 국회의원 만들어놓고 자기들끼리 죄없는자가 돌을 던지라잖아요.
공-끼리끼리인거죠.
김-약자가 아니라 기득권을 위한 완벽한 배려잖아요. 내가 거기서 있었다면 돔을 들어서 던지고 싶었을 것 같아요.
공-나도. 나도 국회의장한테 ‘나 그부분에 대해서는 죄없어’ 이러면서 확 돌을 던졌을 것 같아요. 뻔뻔의 극치인거야.
김-국민들을 야단치고 훈계할 대상으로 보나봐요.
공-오만방자가 하늘을 찌르지. 이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봐요. 난 너무 웃겨요. 자기들이 500년간 귀족가문이었으면 그러려니 이해해. 그런데 입만 열면 ‘내가 옛날에 리어카 끌어봐서 아는데...’ 이런 식으로 말을 해요. 알면 얼마나 서러운지도 아는거 아닌가요?
김-술, 담배를 끊으려고 했는데 그 영화 보고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어요.
공-뭐하러 끊어.
김-누나는 술 취하면 같은 말 계속 하는거 알아요?
공-깨서도 또 하지.
김-책 보고 영화보러 가려다가 결국 책은 두페이지 밖에 못 읽었어요. 그런데 누나는 어떻게 그런걸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소재는 어디서 나와요?
 

공-후기에도 썼는데, 당시에 나는 다른 작품을 쓸려고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아마 촛불시위 막바지 정도 됐을 때인것 같아. 기사를 봤는데 저 구절이 나오는거예요.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순간 청각장애인들의 울부짖음이 법정을 울렸다고. 근데 표현이 이상하잖아. 안 어울리고. 도대체 청각 장애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낼까 했죠. 마치 내 귀에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건을 찾아봤지. 그 당시로부터 2~3년전 사건이예요. 장애인 시설에 성폭행사건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이상해서 찾아봤더니 사건이 정말 기기묘묘하더라고. 연락해보고 자료를 찾는데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어요. 광주로 내려갔죠. 그때 광주의 상황은 이 영화 끝 부분에 나오는 절망감과 초토화된 울분만 남아있었어요.
그분들이 그때까지 3년을 싸웠거든. 그런데 그분들을 만났는데 그분들도 나도 순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리가 법적으론 졌지만 다시 이 이야기를 하면서 더 큰 승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지. 열심히 취재했어요.
 

김-시사회 때 보니까 판사 변호사도 많이 왔던데요.
공-많이 왔더라고. 보고나서 민망했지. 괜찮으셨냐고 물어봤고. 기독교인들에게도 미안하고. 이번에 최고의 악역을 연기한 분도 장로님이래요. 오히려 그분은 그래서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배우와 스태프들의 헌신이 작용한거죠. 시사회때 어떤 분은 그러시더라고. 사법연수원생부터 봐야하는 영화로 지정해야 한다고.
김-악역 연기하신 배우처럼 정말 하나님 잘 믿고 올바른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이 모독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영화는 필요할 것 같아요.
공-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가는 중년 부부가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간대요. 트위터로 알려왔어. 그 분들이 왜 이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하실까. 청각장애인들이 어떻게 당하는지 보고싶어서 오지는 않을거 아녜요.
김-약자를 어떻게 도울지 고민하는데서 시작해서 이제 시스템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 같아요. 공허한 거대 담론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 그러다보니 사람들을 응집시키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공-운이라고 생각해요. 예정대로라면 작년 이맘때 나왔어야 하는데. 그 1년 사이에 부패의 늪은 더 깊어졌고 우리의 무력감은 더 심해졌어요. 무력하지 않아요? 난 개인적으로 무척 그래요. 돈이 없어서 1년 더 늦게 만들었는데 제작자나 모든 사람에게 운이었던 것 같아요. 하늘의 배려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잘나갔으면 이런 반응은 없었을 거예요.

김-맞아요. 무력감이 극에 달해있어요. 분노도 차있고. 그런데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거죠. 지금은 또 위로받고 싶은 시대인것 같아요. 남들을 위로할 때 자기도 위로 받잖아요.
공-저 약한 아이들이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 나보다 더 약한 애들이 있었구나 싶은거죠. 나만 생각하고 뛰어가다가 그 아이들을 보니 , 내가 보듬어줬더라면 저 아이들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거지. 그런 의미를 찾은 것 같아요.
김-그렇게 무력감을 탈피하는거죠.
공-후원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더라고. 동기가 부여된거지. 그래도 미스테리야. 이렇게까지 열심히 와서 봐주는 것이.
김-설명하긴 힘들지만, 저 사람과 내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요.
공-나도 이 책 쓴지 2년이 지났는데 영화보면서 느꼈어요. 내가 지난 시간동안 ‘언제든지 나도 저 아이들처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것을 말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불편하겠지만 봐야할 진실이라는 거죠. 내가 저 아이일 수 있다는 불편함 말예요.
김-직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거죠. 무력감에서 탈피하고 힘이 되기 시작한 씨앗이 된거죠.

공-용산 참사, 미네르바 구속. 이때 모든 정체를 드러냈어요. 우리가 10년간 너무 무장해제를 한거야. 역사의 무장해제. 역사의 반동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잖아요. 우리가 다시 언제 70·80년대와 같은 그 시절로 가겠냐며 우습게 보고 모든 것을 무장해제 시켰어요.
그래서 이 정부가 고마운 면도 있어요. 아마 이전의 10년과 같은 분위기가 계속 됐다면 시민운동, 민주운동의 역사를 전수해 줄 사람도 없고, 그 소중함이 뭔지 알지도 못했을거예요. 게다가 염치없는 보수가 이런 것이라는 걸 이 정부가 확실히 알려줬잖아. 사람들은 알아야 해요. 사회의식을 놓는 순간 이렇게 된다는 것을.

난 고사장에 갔을 때 애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더라고. 이 어린 애들이 어떻게 찍을까 싶었죠. 공유, 정유미 두 배우가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돌봤다고 들었어요. 예전에 이 방송이 MBC <PD수첩>으로 방송된 적이 있었어요. 요즘 다시 보기로도 많이 본대요.
원래 이 사건은 실제 가해자 8명에 수많은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예요. 소설이나 영화는 축소한건데 현실이 더하다니 끔찍한거지. 인권위 조사관이 이 사건을 조사하고 혐오감에 혀를 내둘렀다잖아요. 그들은 장애를 전적으로 이용한거잖아. 소리도 못 지르고 들리지도 않으니까. 게다가 자기가 가르치는 애들인데. 그런 사건이 2005년에 있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앞으로 이런 범죄는 공소시효도 없애고 가중처벌을 해야해요.
그럴려면 국회의원들이 발의를 해야하지. 그런데 영화에 서유진이 말했던 것처럼 발정난 나라라고. 성희롱 했던 사람을 다시 국회의원 만들고, 여기자에게 너 까불면 맞는다고 하는 이 국회의원들에게 뭘 기대해야할까.


 

김-어떻게 감시·감독 시스템이 필요한거죠.
공-지금 있는 시설이나 시스템만으로도 돼요. 문제는 한번도,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거니까.
김-영화를 볼 관객이나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나도 한동안 개인적인 부분에만 치중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눈밖에 벗어난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고 봐요. 시선을 떼지 말고 한눈은 내 개인적인 삶을, 한눈은 우리가 선출해 권력을 위임해 준 그들을 봐야해요. 눈을 떼고 있으면 그들이 우리를 성폭행하러 올지 모른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언론이 절망적이야.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가 몇달 갔잖아. 그 때도 끔찍한 탄압속에서 진실의 기미라도 피워보려고 언론이나 독자 모두 애썼는데 지금은 언론이 기업의 말단사원처럼 눈치보면서 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절망적이예요. 요즘은 그래서 눈뜨면 뉴스 대신 트위터부터 본다니까.


김-그땐 무릎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했잖아요.

공-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김-예전에 피디수첩이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가 되겠다고 했었잖아요. 우리가 적어도 목격자가 되어줘야겠다 싶어요.
공-그러니까. 내가 계속 하는 말이 그거예요. 사람들이 보러 오는 이유도 목격자가 되기 위해서인 것 같고.
김-목격자가 되어주는 것이 힘이 되어주는 거고. 우리가 부당한 일을 당할 때 목격해주고 진술해주고 증언해주는 거죠. 영화를 보는 사람끼리 서로 목격자가 되어 손잡는 느낌이 있는거고.
공-그래서 영화보러 가서 자꾸 몇명이 왔나를 살피는 것 같아요. 내 소설로 만든 영화가 이렇게 돼서 작가로서 행운이고 행복이지만, 시민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불행한 시민인 것 같아요.
김-그래도 관객들이 말해주는 것은 이렇게 많은 목격자들이 생겼으니 희망이 있다는 것 아닐까요.
공-그렇죠.
김-불편하지만 직면하고 대면해야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공-의혹이 있으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표를 행사한 국민들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죠.
이건 딴 이야기인데, 난 앞으로 시위도 굶고 자학하지 말고 놀고 먹는 식으로 해야한다고 봐요. 피켓도 예쁘게 만들고.
김-반값등록금 시위하면서 반값 등록금을 생각하는 남녀의 만남의 장이라고 걸어놓고 미팅도 주선하고요.
공-재미있잖아. 자학하는 투쟁은 20세기로 넘겨요. 그땐 한번도 힘을 발휘한 적도, 이긴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지 몰라도 우리 이겨본 적도 있잖아. 이젠 먹는 투쟁을 해야해요. 국민들한테 삼겹살 받아서 한진중공업 앞에 가서 불판 펴놓고 삼겹살 구워먹고 잔치처럼 하는 거지.
김-야구장 가서 반값 등록금을 지지하는 두산 팬들의 모임, 이런식으로 재미있게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공-그래. 힘들고 매맞고 다치고 굶고 이런거 그만 해야해요. 시위가 축제이어야 하고 호감을 주면서 시민들을 모아야죠.
김-옷도 좀 더 깨끗하고 멋지게 입고 나오고.
공-남말하고 있어.
김-내가 조국 교수님 같은 분 욕은 하지만 그런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그런 분 말야 어쩌면 그럴 수 있지? 너무 잘 생기고 똑똑하고 키도 크고 양복테도 그렇게 좋아.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 개념까지 있으니 어디 흠잡을데가 있어야 말이지. 짜증나.
공-그런데 남을 웃기는 재주는 제동씨 만큼은 아닐거야.
김-오홋. 그거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는데. 하여튼 멋져야 해요.
공-체 게바라보면 전쟁터에서도 안나 카레니나 같은 연애소설을 들고 있었지. 시집도 보고. 그 포탄 속에서도 밤마다 한번도 책을 안 읽은 적이 없대요.
김-맞아 누나. 멋있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