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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통신

사이다 변호사 노영희

by 신사임당 2018. 5. 31.

우철훈 기자 촬영




끊임없이 스타를 낳는 방송가에서 변호사는 꽤 많은 스타를 배출해 온 직업군이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지고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보도, 시사교양, 예능 등 전방위에 걸쳐 이들의 활동반경은 커지고 있다. 


노영희 변호사(49)는 최근 방송을 통해 가장 자주 등장하고 언급되는 변호사 중 한 명이다. 풍부한 법리지식을 기반으로 어렵고 복잡한 상황도 쉽게 풀어내는 데다 속시원하고 설득적인 말솜씨와 전달력, 논리적인 공격력, 여기에 유머감각까지 갖췄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에선 그에게 열광하는 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방송에서 그가 밝힌 법률적 견해나 발언이 실시간으로 기사화되어 나올 정도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수요일 코너인 ‘라디오 재판정’ 을 비롯해 TV와 라디오의 주요 뉴스·보도 프로그램 패널로 활약해온 그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획된 OBS의 <선택 007>에서는 진행자로도 나섰다. 


최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남자들 중에서는 나더러 ‘구타 유발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며 웃었다. 그는 얼마 전 <재산, 자식에게 절대로 물려주지 마라>(둥구나무)는 직설적이고 다소 과격한 제목의 책을 냈다. 가사와 부동산을 전문으로 해온 그의 경력을 감안하면 첨단 절세나 재테크 노하우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책은 의외로 건전한 가족관계와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심리·상담서에 가깝다. 



“요즘 부모와 자식 관계를 보면 서로 ‘채권자’라는 의식을 갖고 바라보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이같이 불행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부모가 자신의 삶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식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거나 과보호하는 대신 자신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삶을 유산으로 물려주자는 거지요. 자녀들에게도 공부 잘하고 출세하는 것을 강요할 게 아니라 본인이 행복감을 느끼며 남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돕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실제로 책에는 100세 시대라는 전례없는 상황에 대처하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기술과 지혜가 상당히 녹아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꽤나 독특한 그의 이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동시에 영재교육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손자를 비롯해 현대, LG 등 재벌가의 자제를 가르쳤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상류층’ 학부모 사이에 자연히 입소문이 퍼졌다. ‘잘 나가는’ 강사였던 그가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일종의 회의감 때문이었다. 


“‘기득권층’을 오랫동안 상대하면서 상당한 심리적 피로감이 누적돼 있었죠. 쉽게 말해 너희들이 그렇게 잘났냐 싶은 억하심정이 오기가 됐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사법시험이 눈에 들어왔지요. 속물적으로 소위 ‘신분상승’의 통로였잖아요. 까짓 거 나라고 못할까 싶은 무모한 마음에 도전했는데 운이 좋았어요.” 


돌도 지나지 않은 딸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시험 준비를 시작했을 때가 2000년이다. 그리고 3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시험 준비기간 중에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쉬지 않았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그는 구로공단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나이가 많았던 데다 법대 인맥도 없었기 때문에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법률적인 문제에 어려움을 겪을 중소기업에서 틈새시장을 찾고자 했다. 적극적이고 화통한 성격, 특유의 열정과 긍정적 에너지 덕분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2011년에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수석대변인을 맡을 만큼 ‘주류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감지해 설득하고 시비를 따지는 변호사의 고유영역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의뢰인의 요구뿐 아니라 판사가 어떻게 사안을 바라보는지 파악해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답변을 하는 것은 승소율과 직결되는 문제다. 때문에 그의 전공인 심리학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조정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방송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변협 대변인을 그만둔 2016년부터다. 국정농단으로 특검이 진행되고 각종 형사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각 채널 프로그램마다 법률적 지식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풍부한 배경 지식, 쉽고 시원시원한 설명 때문에 그는 순식간에 방송가에서 앞다퉈 찾는 출연자가 됐다. 이때 생긴 별명이 영화 <슈렉>에 나오는 ‘피오나 공주’다. “비슷하게 생겼잖아요. 그런 별명이 좋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뻔뻔’하게도 예쁜 피오나 공주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웃음)”


<김현정의 뉴스쇼> ‘라디오 재판정’ 코너에는 특히 애착을 갖고 있다. 민감하고 첨예하게 부딪히는 최신 사안을 다루다보니 찬반을 나누어서 논리대결을 펼쳐야 한다. 때로 자연인인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방송을 위해 양보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일종의 역할극을 해야 하는 셈이다. 이 코너 초창기 금태섭 변호사(현재 민주당 국회의원)와 함께 출연했을 때 한참 뜨거운 이슈였던 국정교과서 문제를 다루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찬성 논리를 펼쳐야 했다.


“그때 방송자료를 근거로 저를 비난하는 분들도 계세요. 주제나 내가 어떤 논리를 맡느냐에 따라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더 많은 청취자들이 다양한 견해를 접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면에서 보람이 크지요.” 


거침없고 저돌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알고보면 허당기도 꽤 많다. 남의 재산 문제는 철두철미하게 챙기면서 정작 자신은 사기를 당하거나 애먼 빚을 갚은 적도 있다. 올해 대학생이 된 딸과 중학생인 아들을 둔 그는 비자발적 ‘방임형’ 엄마다. 



“친정 부모님께 아예 맡겨놓고 키웠어요. 내가 한 것도 없으면서 아이들한테 간섭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인지 다행히 아이들과 갈등도 없고 사이도 좋아요.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편하게, 스스로 행복을 느끼며 살라는 거예요. 길지 않은 변호사 생활 기간동안 절실하게 느낀 것은 남이 나를 보는 기준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내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