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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토크

떼쓰는 재계 변함없는 재계

by 신사임당 2013. 8. 27.

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28일로 예정된 10대 그룹 총수와 대통령의 오찬간담회를 기점으로 준비해 온 모양새입니다. 올들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초기 취지와는 달리 변질되고 퇴색하고 약화된 것이 많아 공약과 생색, 그리고 본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현 정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권을 위협받고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워지며 투자가 위축돼 경제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재계의 논리를 보면 그동안 무소불위의 경영권을 휘둘러 온 재벌들이 최소한의 견제도 받기 싫다는 몽니로 보입니다.

당장 SK 최태원회장, CJ 이재현 회장만 봐도 그렇습니다. 탈세, 배임, 횡령 등 지배주주라는 이유로, 재벌 총수라는 이유로 불법을 저질렀지만 내부에 견제나 감시기제가 원활하게 작동했더라면 이런 일까지 빚어졌을가요? 편법적으로, 탈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다보니 결국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겁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재벌총수와 같은 지배 주주들의 전횡을 감시하고 견제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입니다. 한창 문제가 되고 있고 이미 벌어진 일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바로잡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계는 취지를 이해하고 그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공감한다면서도 반대를 합니다. 지금은 너무 이르다는 것인지, 아직 더 많은 기득권을 누릴 게 남아 있다는 뜻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한편으론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민주주의 역사만큼이나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역사도 짧습니다. 산업혁명이후 몇세기에 걸쳐 자본주의를 습득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해 온 구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기업과 국민 모두 압축성장이라는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 와중에 온갖 탈법과 편법이 판쳤고  될놈만 몰아주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약자와 함께 하는 문화는 전혀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기업들 입장에선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 만,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규모나 글로벌 위상을 가진 기업들이 등장하는 마당에 언제까지 과거 타령만 하고 있어야하나요.

 

 

올들어 일감 몰아주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텐데 이런 고질적인 문제들도 내부의 견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내 새끼, 내 가족을 위해 따로 회사 차려 돈벌게 해주는게 뭐가 문제인가, 인지상정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그렇고 누구나 그런 마음 갖고 있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밖에서 뭐 맛있는 거라도 먹게 되면 싸와서 애한테 갖다 주고 싶고 남들이 쓰는 좋은 물건이나 예쁜 옷은 내 아이에게도 갖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입니다. 내 것 안에서 내가 마음대로 하고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 가족을 챙기는거야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회사는 다릅니다. 특히 주식시장에 상장한 회사들은 다른 사람들의 투자를 받아 그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주주들의 간섭과 잔소리도 들어야 하고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해야하는데 그걸 싫다고 한다면 주식회사이길 포기해야하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되고 있는데 이 사업과 연결해 새로운 노다지 꺼리를 발견합니다. 그럼 회사에서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새로운 사업부문을 만들어 이 사업을 하게 된다면 새로운 수익원이 발굴되는 것이고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회사의 수익이 늘어나고 주주들에게도 배당이 많아져 이익이 돌아가는거겠죠.

그런데 현재 많은 기업들은 알짜의, 소위 땅짚고 헤엄치는 사업들을 자기 가족이나 친인척들이 회사를 만들게 하고 거기에 몰아줍니다. 총수의일가가 최대주주가 돼 그 이익을 고스란히 챙기는 거지요. 일감 몰아주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례로 등장하는 글로비스 가 대표적입니다. 만일  이런 일이 있을 때 사내 이사회에서 견제하고 감시하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물론 개정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일찍 이런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제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거죠.

그전에 문제가 됐던 롯데나 CJ그룹의 극장내 부대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극장에서 팝콘이나 콜라를 판매하는 사업은 특별한 자본과 기술

, 설비가 들지 않고 손쉽게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입니다. 롯데에서 영화관 매점사업을 담당했던 시네마통상은 신격호회장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 28.3%, 신 회장의 동생 경애씨가 47.15%를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대부분 이런식이죠. 경제개혁연대 조사를 보면 신이사장은 시네마 통상에 1억7300만원을 투자했는데 지난해 8월말 기준으로 받아간 배당이 23억7000만원입니다. 수익률 655%. 이런 사업이 어디있겠으며 이런 사업을 남 주고 싶겠나요.  경제민주화 분위기 때문인지 올 초 롯데는 총수일가가 매점사업에서 손을 떼고 이 사업을 롯데시네마가 직영하는 체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총수 일가에 몰리던 이익이 롯데시네마라는 회사로 집중되고 이 회사 주주들이 이익을 얻는 정상 구조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혹시 외환위기 직후이던 1998년에 활발했던, 장하성 교수와 참여연대가 이끌던 소액주주 운동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참여연대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액주주들의 힘을 모아 소송을 했습니다. 그전까지 그냥 호구, 개미취급 받던(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만) 소액 주주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움직임이었지요.

요는 이렇습니다. 삼성이라는 엄청난 대기업에 투자했는데, 이 삼성이 제대로 투명하게 경영하지 않으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입니다. 반도체를 통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는데 이를 삼성전자에 재투자하지 않고 총수의 마음대로 자동차 사업에 사용하거나 계열사 지원에 썼다는 거지요. 또 아들(이재용 부회장)에게 전환사채를 편법으로 증여함으로써 엄청난 이익을 세금없이 줬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주주입장에서 보면 회사의 이익이 부당하게 빠져나간 것이고 이를 바로잡겠다는 취지에서 소송을 했던 것이죠.

당시 소액주주 운동은 작지만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삼성은 참여연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부당내부거래 금지 조항을 정관에 반영했고 SK텔레콤은 부당내부거래를 원상복귀 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역시 처음으로 소액주주의 힘, 변화하는 세상의 무서움을 느낀 것이죠.

 

 

1999년 삼성전자 주총장에서 질문하는 장하성 교수/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때도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니 마니 하는 논쟁이 붙고 재계와 시민단체가 힘겨루기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어쩜, 21세기가 되고 십수년이 더 흘렀는데 아직까지 그 논쟁이 계속될까요. 경악스러운 것은 재계의 논리와 핑계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동안 기업은 뭘 했나요.  묻고 싶습니다.